집채만한 불덩이가 산과 들판, 마을에 휘몰아치던 지난 25일 밤 6시 이장 부부는 처남댁과 주민을 태우러 옆 마을로 달렸다.
60대 권영선 영양군 석보면 삼의리 이장은 “동네 전 지역이 불이 붙었다”는 이웃마을 화매리의 긴급 소식을 전해듣고 그 마을을 향해 아내와 함께 차에 올랐다.
처남댁을 태우고 다시 삼의리로 돌아가는 길. 평생 의지가지삼았던 나무와 숲, 산과 들녘은 이미 화마(火魔)의 편에 서 있었다.
2시간여 지난 오후 8시께 불탄 차량이 917번 국도에서 발견됐다.
조금이라도 몸을 숨기려 안간힘을 쏟은 듯 근처 배수로에서 시신 3구가 발견됐다.
영양군은 고 권 이장이 주민대피를 위해 노력했던 희생정신을 기리는 방안을 찾고 있다.

27일 오후 경북 영양군 군민회관에 화마를 피한 500여명의 주민이 모여있었다.
적십자 등 도움의 손길로 펼쳐진 10여개 대형 텐트 속에 드러누운 이들은 아직 집과 생계터전을 고민할 겨를 없이 공포의 기억과 싸우고 있다.
주민 대피령이 내려진 후 지난 25일 영양군 수비면에서 가족과 함께 영양읍 임시대피소를 찾은 김모 씨(50대)는 “아들과 함께 나올 때까진 집은 불타지 않았고 농작지와 과수원, 뒷산은 이미 불길에 휩싸인 상태였다”고 목소리를 떨었다.
그는 살고 있던 주택이 얼마나 탔는지 아직 모른다며 귀가를 걱정하고 있었다.
70대 이모 씨는 “불이 날아다니는 것을 평생 처음 봤다”며 “집과 창고, 트럭과 트랙터, 농기구가 다 타버려 어떻게 뒷감당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영덕… 타들어 가는 산야와 함께 경북이 울부짖고 있다.
지난 22일 오후 의성군과 안동시에 산불대응 3단계 발령 이후 25일 청송, 영양, 영덕까지 3단계 대응발령이 이어졌지만 27일 낮까지 진화율은 절반에도 못미치고 있다.
가장 사망자를 많이 낸 영덕군은 진화율이 10%에 머물고 있다.
이번 산불로 영덕에선 사망자 8명(남4, 여4) 등 인명피해 19명이며 실종자 1명의 행방도 알 수 없다.
27일 오전 중대본이 집계한 전국 산불사태 사망자 26명, 중상 8명, 경상 22명 가운데 사망자 22명이 안동 4명, 청송 3명, 영양 6명, 영덕 9명 등 경북 4개 시·군에서 발생했다.

화마의 직격탄을 맞은 경북 5개 시·군에서 주택 2448채 등 건축물 피해가 2572곳으로 늘었다.
지난 22일 오후부터 27일 오후 1시까지 총 주민 3만3089명이 대피했고 아직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주민 수가 1만5369명이다.
중대본이 이날 오전 밝힌 산불 영향구역과 피해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산불영향 구역은 3만6009ha였고 산림훼손은 물론 문화유산 소실도 엄청난 것으로 알려졌다.
천년 고찰 의성 고운사도 잿더미로 변했고 국가지정 문화유산 보물인 대형 누각 가운루와 연소전 등 전각과 목조물 대부분이 소실됐다.
몇초의 실화가 평생의 삶과 터전, 미래, 그리고 ‘천년’을 태워버렸다.
영남취재본부 김용우 기자 kimpro7777@asiae.co.kr
영남취재본부 김귀열 기자 mds724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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