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승 달성 ‘1등 마주’ 이종훈… “말 한 마리의 인생, 그 자체가 감동입니다”아시아경제 기사제공: 2025-05-11 21:31:43

"경주마는 손대면 깨질 것 같은 크리스털입니다.
그래서 한 마리 한 마리의 생애가 소중합니다"

국내 경마사상 최초로 마주 300승을 달성한 이종훈(63) 씨는 말을 '투자의 대상'이 아닌 '동반자'로 여긴다.

부산경남경마장에서 활동 중인 이 씨는 지난 3월, 자신의 말이 결승선을 통과하며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마주로서는 전례 없는 '300승'이다.

경마에서 마주의 역할은 단순하지 않다.
경주마를 구입하고 조교사에게 위탁해 훈련시키는 데 드는 비용은 전적으로 마주의 부담이다.
사료비, 인건비, 관리비는 물론이고 성적 부진으로 인한 손해 역시 감수해야 한다.
이 씨는 이런 환경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경주마들과 함께 걸어왔다.

"제 능력이 아니라 좋은 인연 덕입니다.
마주는 믿고 기다리는 게 전부예요"

이 씨는 마주의 성공 비결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경주 성적이 좋으면 말 덕, 기수 덕, 조교사 덕이라고 생각하고, 안 풀릴 때는 자기 탓으로 돌리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경마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아버지와의 추억에서 비롯됐다.
이 씨의 아버지는 해방 전 대구 벌마동 경마장 인근에서 자라며 경마장을 자주 찾았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이 씨는 2004년 부산경남경마장 개장 당시 지인의 권유로 마주 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께 마권 한 장이라도 드리고 싶었어요. 그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경주마가 대상경주에서 우승하던 날, 시상대 위에 함께 섰다.
이 씨는 "마주가 되어서 가장 잘한 일은 효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코로나19 시기에는 적자와 슬럼프에 시달렸다.
마주 생활을 그만둘까 고민도 했다.
그때마다 이 씨는 말을 맡긴 조교사를 믿고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조급해지면 말도, 사람도 망가집니다.
조교사가 소신껏 훈련할 수 있게 지켜보는 게 마주의 역할입니다"

경주마의 생애는 짧다.
평균적으로 한 마리가 출전하는 모든 경주를 합쳐도 약 30분 남짓. 이 씨는 "그 30분을 위해 5∼6년간 땀과 정성을 쏟는다"며 "결과는 찰나지만 과정은 인고의 연속"이라고 강조했다.

말이 우승했을 때 가장 먼저 조교사에게 묻는 말은 "말은 괜찮습니까?"다.
마주로서 가장 힘든 순간은 경주마의 부상 소식이다.

"가장 받기 싫은 전화가 아침 10시 전에 오는 전화입니다.
대개 그건 사고가 났다는 뜻이니까요."

이 씨는 말에 대한 애정을 넘어서 경마 자체가 가진 매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말의 눈은 참 선하고, 근육은 헤라클레스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런 동물이 사람과 교감하며 끝까지 달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입니다.
그게 경마의 진짜 매력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