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신흥 부유층… 자전 에세이
“생계 위해 장사 뛰어든 여성들
사회주의 체제에 큰 염증 느껴
김정은, 젠더정치로 女 도구화
운전 불허·이혼하면 감옥 보내
여성 가치 재창조 주목 자부심”
“한국에서는 북한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의 가치를 재창조하는지 주목한 적이 없죠. 탈북민으로서 이것을 최초로 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
북한 시장에서 발현된 여성의 주체성을 바탕으로 북한 사회를 조명한 신간 ‘여자는 죽지 않았다’를 쓴 작가 설송아(본명 최설)씨는 출간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을 보는 시선은 정권에 대한 비판이나 인권 문제 등에 쏠려 있는데, 누군가는 북한 여성에 대해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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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 여성인 설송아 작가가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북한 여성과 경제를 다룬 신간 ‘여자는 죽지 않았다’를 소개하고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
평안남도 출신으로 2011년 한국에 입국한 그는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4년 통일부 공모작에 선정된 그의 책은 북한 장마당에서 신흥 부유층으로 성장했다가 사회주의 체제에 한계를 느껴 한국행을 결심한 그의 자전적 에세이다.
책에서는 북한의 시장화를 이끈 여성들이 자립과 자아실현에 눈뜨고, 남편과 수령으로 상징되는 ‘남성 권력’에 종속되는 것이 숙명이 아님을 깨닫는 과정이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북한에서는 최악의 식량난과 대기근 시기인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1995년, 말 그대로 먹고살기 위해 여성들이 장사에 뛰어들었다.
설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페니실린, 제빵 사업 등을 맨손으로 일구어 전국 단위로 확장해 큰 돈을 벌었다.
1996년 당시 4급 교사이던 남편 월급이 3800원이었는데, 그 혼자 하루에 5만원을 벌기도 했다.
설씨는 “원료를 싸게 들여와 산하 공장에 공급하고, 물품을 회수해 주민들에게 배급하는 사회주의 시장은 1991년부터 망했다”며 “지금은 공장 설비를 국가가 개인에 임대해 상품이 만들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사회주의를 고수하면서도 장마당 운영은 암묵적으로 눈감는 북한 경제에 대해 설씨는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국가가 여성을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에서 이는 더 두드러진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젠더 정치’에 대해 설씨는 “여성을 인정해주되 그 방식이 매우 교묘하다”고 진단했다.
아들이 있음에도 딸 김주애를 내세우는 것은 ‘최고 지도자도 딸을 중시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의도적인 행보라는 분석이다.
북한이 세계여성의날을 ‘3·8절’이라 부르며 태양절보다 큰 명절로 기념하고, 어머니대회를 여는 것 등도 마찬가지다.
설씨는 “이제 여성을 무시하고는 민심을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아는 김정은은 국가의 남성성을 더 깊이 유지할 수단으로 여성의 환심을 사려 한다”며 “진짜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속내는 북한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최근 장마당에 물류나 유통업으로 참가하는 남성이 늘고 있는데, 이는 북한 여성에게 운전 면허가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장사에 수반되는 이동을 자전거에 의존했던 북한 여성들은 이조차 당국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설씨는 이에 대해 “2006년쯤 북한에서 자전거 타는 여성을 통제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며 “남성 전유물로 여겨진 자전거가 여성에게 넘어가자 남성 권위 위협으로 인식됐고, 여성의 사회경제적 자립을 억압하려는 시도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황당한 단속은 자전거를 빼앗겨 일생 동안 갚지 못할 빚더미에 앉을 위기에 처한 한 여성이 70m 높이의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일을 계기로 사라지게 된다.
장마당에서 여성의 활약이 커질수록 북한은 ‘남성의 위상 살리기’에 골몰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남성이 국가로부터 받는 월급이 20배 넘게 올랐다.
2000원 받던 월급이 5만원이 됐다.
설씨는 “여성이 가정의 생계를 움직이는 상황에서 남성의 위상이 내려가니 사회주의 체제를 위협한다고 봤고, 그래서 남성의 권위를 높여주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녀 간 경제력 격차로 이혼하는 부부가 증가하자 이혼하면 무조건 감옥에 보내는 극단적인 정책도 생겼다.
설씨는 “여성의 종속을 제도화하려는 시도가 계속되면서 여성들은 결혼 등록을 피하고, 아이도 안 낳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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