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화를 가로막는 핵심 장애물로 '내수 기반의 낡은 제도'가 지목됐다.
투자계약 구조, 외환 관리, 조세 체계 등 창업 생태계를 둘러싼 법·제도가 여전히 20세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진단이다.
전문가들은 스타트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정책의 관점을 '국경을 넘는 기업'을 전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훈 법무법인 미션 대표변호사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스타트업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국내 창업 제도는 철저히 한국에서 창업하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것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며 "두 나라 이상에 기반을 두고 성장하는 '크로스보더 컴퍼니' 전략에 맞춰 모든 구조를 다시 짜야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투자계약 구조의 개편을 강하게 주장했다.
"해외 벤처캐피털(VC)은 라운드마다 공동의결권을 행사하지만, 한국은 개별 투자자마다 비토권을 부여하는 구조"라며 "VC가 30곳 이상 참여한 스타트업이 모두의 동의를 받아야 사업 결정을 내리는 상황이라면,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 매력 없는 시장이 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일례로 이스라엘은 해외 본사 전환(플립) 과정에서 별도의 조세 이슈가 없다"며 "플립 과정에서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자본 이익에 대해 과도하게 세금을 납부하도록 하는 이러한 제도적 개선은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대희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는 창업 생태계의 국제화에 있어 인재 유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 실리콘밸리는 고숙련 이민자를 정책적으로 유치하며 창업 클러스터를 자생적으로 성장시킨 반면, 한국은 외국 고급 인재의 정착률이 극히 낮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유학생의 졸업 후 취업률은 8%에 불과하고, 기술창업비자(D-8-4)를 통해 유입된 외국인은 10년간 300명 수준에 그친다.
박 대표는 "단순한 비자 정책만으론 부족하다"며 "정주 지원, 가족 동반, 세제 혜택, 문화·언어 적응 지원까지 통합된 정책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유니콘 수가 수년째 정체된 반면, 미국은 전체 유니콘의 절반 이상이 이민자 창업자에 의해 탄생했다"며 "기술과 자본을 논하기에 앞서, 인재를 끌어들이는 국가로 전환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력을 논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업체인 서울로보틱스의 이한빈 대표는 "해외 VC에 한국은 투자도, 회수도, 상장도 어려운 시장"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초기부터 해외 투자로 사업을 진행해왔지만 지금도 자본 유입이 막히는 일이 다반사"라며 "투자금을 달러로 받으면 환전 수수료로 수억 원이 빠져나가고, 환전 승인도 사전에 허가받아야 한다.
회수 시에도 같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해외 투자자 입장에선 한국을 꺼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해외 상장 시 과세 구조도 지적했다.
그는 "만약 해외 상장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려고 하더라도 세금을 30%를 내야 한다"며 "환전할 때 왜 이렇게 해외 투자자들이 투자하기 어렵게 만들어놨냐고 물어보니까 박정희 정부 이후로 제도 업데이트가 안 됐다고 말하더라. 해외 투자자들은 보통 상장 기업에만 투자하지, 스타트업 대상은 거의 없어 유지되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송명수 펜벤처스코리아 대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 설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스타트업 매출의 8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해야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라며 "최소한 15년 동안 어떤 결과를 낼 건지 목표를 갖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대표는 "해외에서 큰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현지 레퍼런스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 차원의 글로벌 펀드 출자도 한 곳에 200억을 몰아주기보다는 20억원씩 열 군데에 나눠주는 등 참여하는 플레이어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성민 기자 minut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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