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 1000억달러(약 145조9000억원)의 깜짝 투자를 발표하면서 트럼프발(發) 관세 폭탄에 대응하는 동시에, 대만 내 생산기지에도 공을 들이며 대중 견제력을 높이는 모양새다.
특히 반도체 초미세 공정 설비 구축에 속도를 내면서 시장 수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한때 생존을 위해 무명(無名) 산업에만 매달렸으나, 이제는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 1위의 자리를 적극적으로 지키고 나선 TSMC. 아시아경제는 대만 현지 취재와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글로벌 무역전쟁에 대응하는 TSMC의 전략과 위기 요인, 한국에 올 기회를 총 4회에 걸쳐 진단한다.
<글 싣는 순서>
<1> 神이 된 TSMC…‘2나노’ 성지 가보니
<2> TSMC 발목 잡는 ‘6결’과 기술 안보
<3> 無名 대만이 열린다
<4> 한-대만, 견제와 협력 사이

대만의 지난해 무역 통계에서는 '원중근미(遠中近美·중국을 멀리하고 미국을 가까이함)'의 기조가 뚜렷하게 확인된다.
미국으로 경제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동시에,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 자립해나가려는 의지는 해가 갈수록 더욱 확고해지는 추세다.
대만 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만의 무역은 미·중 간 패권 경쟁과 공급망 재구조화, 인공지능(AI) 수요 확대 등의 여파로 큰 변화를 겪었다.
대만의 대중 수출액 규모는 1506억달러(약 218조2947억원)로 1위를 유지했지만,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1.7%로 23년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5년 전까지 43.9%(2020년)를 차지하며 절반에 육박했다가 이후부터 지난해까지 4년 내리 감소했는데, 이는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반면 대미 수출은 1114억달러로, 23.4%를 차지하며 24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2020년의 비중은 14.6%에 불과했다.
대만의 대중 무역흑자 규모는 700억달러, 대미 무역흑자는 649억달러로 그 차이가 51억달러까지 좁혀졌다.
그 간격은 32년 만에 가장 좁아진 것이다.
대만과 한국의 무역도 지난해 큰 변화를 맞았다.
SK하이닉스가 TSMC에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을 늘리면서, 대만의 대한국 무역 적자는 지난해 229억달러로 역대 최대규모를 기록했다.
그러면서 일본(206억달러)을 제치고 한국이 대만의 최대 무역적자국 자리에 올랐다.
일본으로의 수출은 전년 대비 17.8% 감소했는데, 이는 15년 만의 최대폭이다.
일각에서는 대만이 미국과 빠르게 밀착하는 과정에서 '칩 공동화' 문제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미국이 대만 첨단 반도체 생산 기지의 상당 부분을 미국으로 옮기는 데에 성공할 경우, 초미세 공정은 미국에, 레거시(범용) 공정은 중국 본토를 비롯한 제3국에 주도권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하오난 중국 공공외교 정책 싱크탱크 차하얼학회 연구원은 "보안과 반도체 산업 사이에서 대만은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라면서 "반도체 관련 지배력을 잃으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약화할 뿐 아니라 경제는 새로운 취약성에 노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본토는 이러한 변화를 이용해 저가 및 중가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지속하며 대만을 압박할 수 있다"면서 "전문가들은 몇 년 안에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공동화'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본다"고 경고했다.
중국과 교역을 줄이고 반도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며 나타날 중국의 군사적 압박도 대만을 둘러싼 위기 요인이다.
중국은 국방비 예산을 한 해 전보다 7% 이상 늘리며 군사력 증강을 천명했다.
중국 국방비는 지난 30년간 매년 6.6% 이상 뛰었고, 그 결과 2013년 7200억위안(약 144조2000억원)에서 올해 1조7800억위안으로 2.5배가량 늘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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