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관세 제외로 반도체 업계 일단 한숨 돌려
품목별 관세 부과·보조금 재협상 문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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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한국 시간) 백악관 경내 로즈가든에서 상호관세 부과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AP.뉴시스 |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가별 상호관세 부과를 공식화했다. 일단 반도체는 이번 관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국내 반도체 업계가 한숨을 돌리는 모습이다. 다만 '트럼프 리스크'와 관련한 긴장도는 여전하다는 반응이다. 추후 품목별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데다, 반도체지원법(칩스법) 보조금이 축소되거나 폐지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시간 3일 오전 5시 백악관 경내 로즈가든에서 행사를 열고 국가별 상호관세 세부 내용을 발표했다. 상호관세는 특정국 수입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상대국도 동일하게 적용하는 정책으로, 한국은 25% 관세율이 책정됐다.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관세가 50% 수준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이번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 한숨을 돌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관세 전쟁이 글로벌 수준으로 확대됐음에도 반도체만큼은 사정권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는 게 국내 반도체 업계의 설명이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은 예측할 수 없어 추후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상황별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차용호 LS증권 연구원은 "반도체가 상호관세 제외 품목으로 지정됐으나, IT 디바이스에 대한 관세는 면제되지 않았다"며 "대부분의 세트 조립이 중국, 인도, 베트남, 멕시코 등과 같은 인건비가 저렴한 국가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결국 수요 측면에서는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가 걱정하는 대목은 품목별 관세 부과 가능성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반도체에 대한 품목별 관세가 최소 25% 이상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날도 백악관은 반도체가 상호관세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배경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별도 산업별 관세를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 이러한 리스크를 해소하려면 미국 현지 생산을 확대해야 하지만, 이 역시 비용과 시간을 고려한다면 실효적인 대안이 아니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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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제품은 이번 상호관세 대상에서 제외됐다. 사진은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 반도체 공장 내부. /뉴시스 |
물론 직격탄을 맞은 자동차 등 다른 산업과 비교한다면 반도체를 둘러싼 트럼프 리스크는 그리 크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먼저 대미 수출 비중 자체가 낮은 편이다. 한국 기업들의 대미 반도체 수출 비중은 지난해 기준 7.5%로 중국(32.8%), 홍콩(18.4%), 대만(15.2%) 보다 더 낮다.
산업 특성상 미국이 쉽게 관세를 매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한 국가가 아니라 여러 나라를 거쳐 제조되는 방식이라 반도체 품목을 놓고 관세를 매기기 까다로울 것이다. 반도체 안에서도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다. 종류별로 어떻게 관세를 부과할지도 고민이 깊을 것"이라며 "세부 시행 방침을 정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재 반도체 업계는 관세 부과와 관련해 당장 비상등을 켜기보단 침착하게 후속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오히려 관세보다는 반도체 보조금 지급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여기는 분위기다. 미국에서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고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 대상으로 보조금을 주는 칩스법에 따라 당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47억5000만달러(약 6조9500억원), 4억5800만달러(약 67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받기로 돼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제정한 칩스법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며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는 국가 간 문제지만, 보조금은 미국이라는 나라와 개별 기업이 얽힌 문제라는 점에서 삼성과 SK의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며 "보조금 지급을 무효화하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보조금 이슈를 협상 카드로 꺼내 들 수 있다고 본다. 기업이 궁지에 몰리지 않게 정부 차원의 지원과 대응이 절실해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상호관세 25% 발표에 따른 대책 논의를 위해 긴급 경제안보전략TF 회의를 열었다. 여기에서 한 권한대행은 산업부 장관에게 "지금부터 본격적인 협상의 장이 열리는 만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미 협상에 적극 나서달라"며 "관세 부과로 영향을 받을 업종과 기업에 대한 긴급 지원 대책을 범정부 차원에서 조속히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roc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