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트럼프 vs 쿡…애플 운명 건 눈치게임아시아경제 기사제공: 2025-04-13 07:00:00

"팀 쿡은 더욱 얇아지고 불안정한 줄 위를 걷고 있다.
"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기자이자 작가인 패트릭 맥지는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경영 능력이 또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고 진단했다.
4년 만에 백악관으로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더 세진 화력을 자랑한다.
임기 초반 20%로 시작했던 대중 관세율은 이제 최고 145%에 이른다.
팀 쿡 CEO는 트럼프 1기 당시 미국과 중국을 오가는 '외줄 타기 전략'으로 애플을 구해내 시가총액 1위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는 이번에도 '경영의 묘'를 발휘할 수 있을까. 다만, 시장에선 확률적으로 더 어려운 게임이 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애플에 생긴 변화 중 하나는 인도·베트남으로 공급망 다변화를 가속화하는 대목이다.
2023년 기준 애플의 아이폰·아이패드·맥북 등을 포함한 제품 95% 이상이 중국에서 생산됐다.
애플은 미정부의 눈치를 보며 최종 조립처를 인도·베트남 등으로 확대하는 중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달 초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애플이 중국의 높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인도에서 더 많은 아이폰을 미국으로 조달할 계획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인도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내심 반기는 모양새다.
인도 일간 이코노믹타임스는 "인도가 아이폰 생산의 새로운 거점으로 떠올랐다"며 중국보다 낮은 상호관세(26%)를 부과받은 데 따른 반사 수혜를 점쳤다.

그러나 주요 외신들은 애플이 중국 중심의 전략을 완전히 버리긴 힘들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아이폰 제조공장을 중국에서 미국으로 옮길 수 있다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바람은 '망상'에 가깝다는 게 정보기술(IT) 업계 중론이다.
미국 AP통신은 ▲수십 년간 구축된 중국 내 공급망 ▲미국의 제조 인프라 ▲숙련 인력·산업 집적도 부족 등을 이유로 꼽았다.
웨드부시증권의 댄 아이브스 애널리스트는 "미국에서 아이폰 생산 시 가격은 3000달러 이상에 달할 것"이라며 "가장 이른 시점도 2028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작년 출시된 '아이폰16' 시리즈의 프로맥스 모델 가격은 지금도 1200달러를 호가한다.

일각에선 중국의 중요성을 두고 '저임금'에 초점을 맞추지만, 핵심은 숙련된 인력의 차이다.
이는 팀 쿡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에서는 금형(tooling) 엔지니어 회의를 열자고 해도 방 하나 채우기가 어렵지만, 중국에서는 축구장 여러 개를 채울 수 있다.
" 그는 2017년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애플의 대표작인 아이폰은 1000개가 넘는 부품을 조립해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만드는 제품들은 매우 정교한 금형 기술을 필요로 한다"며 "우리가 사용하는 소재들과 작업 방식에는 최고 수준의 정밀도와 첨단 기술이 요구된다.
이곳(중국)의 금형 기술력은 매우 깊고 탄탄하다"고 중국의 기술력을 치켜세웠다.

더구나 중국은 아이폰 시리즈의 중요한 매출처이기도 하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애플은 2023년 4분기 중국 시장 점유율 21%로 1위를 찍은 뒤 작년 내내 14∼17% 점유율을 기록하며 중국 비보·화웨이·샤오미 등과 비슷하거나 뒤처졌다.
팀 쿡 CEO도 직접 중국을 챙기고 있다.
지난달 23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 속에서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발전포럼(CDF) 참석차 직접 방중해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 등과 만났다.
중국과의 완전한 결별은 정치적 보복과 사업 타격으로 이어질 위험도 안고 있다.

시장에선 팀 쿡의 '정치적 능력'에 기대감을 걸고 있다.
실제로 과거 트럼프 1기 당시 팀 쿡은 유화 전략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효과적으로 속여넘겼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 때도 애플은 실제로 미국 공장을 짓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3개의 공장을 약속받았다'고 자랑했다.
애플은 트럼프 중국에서 미국으로 일부 맥북 제조기지를 이전하겠다는 약속도 내놨지만 결국 약속을 지키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쿡 CEO와의 끈끈한 관계를 대놓고 자랑하기도 했다.
그는 1기 시절인 2019년 8월 WSJ와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 간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팀 쿡은 관세 문제에 대해 나에게 강력하게 이야기했고, 나는 그의 주장을 이해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쿡 CEO를 가리켜 "나에게 직접 전화해 의견을 전달하는 몇 안 되는 CEO"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성정은 2기 행정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일례로 그는 팀 쿡 CEO의 대미 투자 계획을 '제멋대로' 해석해 자신의 성과로 치부하고 있다.
일례로 애플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발맞춰 5000억 달러 미국 투자와 2만 명 고용 약속을 했지만, 막상 뜯어보면 휴스턴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에 한정된다.
아이폰 제조공장 이전과는 사실상 무관하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여전히 이를 두고 "애플이 미국에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만큼 투자하는 것"이라 발언하고 다닌다.
대중에게 보이는 '정치적 이미지'에 집착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꿰뚫고 있는 쿡 CEO가 정치·외교적 묘수를 보여줄 것이란 기대감이 나오는 이유다.

반대로 '트럼프 속이기' 전략이 이번에도 통하긴 힘들 것이란 비관론도 나온다.
트럼프 본인 역시 이번엔 '예외 없이'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물릴 것이란 방침도 공식 발표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월 13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에게 애플에 대해 관세 예외 조치를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직접 밝혔다.
그는 "애플의 경우 첫 임기 때 (관세 적용) 면제를 허용했다"며 "삼성은 한국에서 제품을 만들고 있었고 삼성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라면서 "당시 세금은 중국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애플은 중국에서 많은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면서 "그래서 그렇게 했는데 그렇지 않다면 공정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이제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방식"이라며 "이것이 훨씬 더 단순하고, 더 나은 방법"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미국산 아이폰'만큼 확고한 정치적 승리는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어 아이폰의 미국 내 생산만큼 상징적인 승리는 드물 것"이라며 "아이폰은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기술 제품 중 하나이며, 이를 미국에서 생산하게 된다면 트럼프의 관세 정책과 '미국 제조업 부활'이라는 대선 공약을 실현하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애플 인 차이나: 세계 최고의 기업은 어떻게 포획됐는가'의 저자이기도 한 패트릭 맥지는 NYT 기고문에서 "이번엔 트럼프 대통령이 애플의 외교적 말장난을 꿰뚫고 있을 수 있다"며 "다만 트럼프는 원칙보다는 이미지와 상징을 중시하는 경향도 여전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결국, 애플의 미래에 투자하는 사람이라면 팀 쿡이 마지막 외교 카드 하나쯤 더 갖고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엔 확률(odds)상 훨씬 더 불리하다"고 덧붙였다.

애플 주가는 10일 기준 하루새 4%가 내려 190.42달러로 마감했다.
이는 연초 243.85달러보다 21%가량 낮아진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관련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영향을 받으면서 주가 변동성도 커졌다.
하루 동안 5% 넘게 폭락하는 일도 잦아졌다.
지난 8일에는 관세 우려가 커지면서 시총 1위를 일시적이나마 2위인 마이크로소프트(MS)에 내주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해방의 날'이라고 지칭한 이달 2일 이후로는 줄곧 하락해 '닷컴 버블' 붕괴 이후 최악의 하락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다만, 이후 애플은 이후 다시 시총 1위를 탈환해 10일 기준 2조9987억달러(4350조원)를 기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