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에는 비가 많이 오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에요."
지난달 17일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서 만난 82세 박꽃님(가명) 할머니의 소원이었다.
2022년 8월 집중 호우가 쏟아진 후였다.
박 할머니처럼 반지하 방에 살던 한 이웃이 침수 피해로 세상을 떠나자, "이런 죽음은 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후 2년이 지났지만 그의 반지하 방 창에는 물막이가 없다.
그를 찾아와 안부를 묻는 구청 직원도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그의 반지하 생활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습기다.
날이 더워져서 여름이 온 것이 아니다.
습기를 머금은 무거운 공기가 내리깔리게 되면, 여기에 더해 곰팡이 냄새까지 곳곳에 퍼지게 되면 비로소 여름이 찾아왔다고 느낀다.
여기에 갑자기 물속에 잠긴 것 같은 답답함이 턱 밑까지 올라오게 되면 폭우가 쏟아진다.
가슴을 짓누르는 습기보다 무서운 것은 침수다.
내리는 빗물이 흘러 벽지를 타고 방 안에 쏟아지는 것은 아닌지 자다가도 몇 번씩 잠에서 깨서 살핀다.
박 할머니가 반지하 방에 살게 된 것은 일 다운 일을 못하게 되면서부터다.
젊었을 때는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도 하면서 살았다.
허리와 무릎의 건강과 맞바꿨지만 돈을 모으지는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허리와 무릎은 점차 망가졌다.
허리가 점차 굽어지게 되자, 식당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사라졌다.
통증으로 거동도 힘들어졌다.
그래도 삶은 이어졌다.
약값을 내려면 비용을 줄여야 했다.
가장 큰 비용은 주거 비용이었다.
가장 저렴한 비용에 한 몸을 뉠 수 있는 곳은 반지하 방밖에 없었다.
그는 "일주일 벌이가 2~3만원뿐이라서 돈을 최대한 아껴 써야 한다"며 "가족도 없고 앞으로 얼마나 살지 모르니 지금 나에겐 반지하가 가장 알맞다"라고 했다.
박 할머니처럼 주거비를 줄이기 위해 땅 아래에 정착한 이들은 서울에만 약 20만2741가구(지하·반지하 주택, 2021년)로 추산된다.
서울 전체 404만6799가구 중 5%에 해당한다.
아파트 한 채에 100억원, 평당 3억원이 넘어간다는 소식이 매일 전해지는 서울에서 5%는 습기와 장마, 가난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다.
기상청 '2025년 여름 기후전망'에 따르면 올해 여름 강수량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많을 확률이 각각 40%로 집계됐다.
특히 여름철 발달한 저기압과 대기 불안정으로 갑자기 폭포수처럼 내리는 국지성 호우가 내릴 것으로 경고했다.
2022년에는 단기간 집중된 비로 인해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숨졌다.
2023년 7월에도 집중 호우로 인해 청주 오송 지하차도가 침수돼 14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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