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1년 잠재성장률 역성장 우려”…‘한강의 기적’ 이뤄냈던 한국 생산성 왜 꺼졌나세계일보 기사제공: 2025-05-11 05:44:51

한국의 중장기 성장률에 ‘경고등’이 켜졌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잠재성장률 전망치를 예전 전망(2022년 11월)보다 크게 하향 조정하면서다.
KDI는 국제통상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자체적인 경제 구조개혁마저 지체될 경우 2041년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가 성장할 수 있는 잠재 능력치로, 결국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궤를 같이 한다.
최악의 경우 약 15년 뒤부터 한국이 만성적인 ‘역성장’ 국가로 전락할 수 있는 셈이다.
이런 우울한 전망은 저출생·고령화가 심화하는 가운데 생산성마저 낮아진 데 따른 결과다.
인구구조 변화는 단기 대응이 어렵고 노동투입 증가라는 결과를 얻기까지 시차가 걸리는 만큼 결국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10일 KDI가 지난 8일 내놓은 현안분석 ‘잠재성장률 전망과 정책적 시사점’을 보면 총요소생산성 성장률이 최근 10년 평균인 0.6%에 수렴하는 기준 시나리오에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31~2040년 0.7%, 2041~2050년 0.1%에 그친다.
KDI는 2022년 11월에도 잠재성장률을 전망했는데 당시 2031~2040년 1.3%, 2041~2050년은 0.7%로 내다봤다.
2년 반 만에 잠재성장률 전망치가 0.6%포인트씩 낮아진 것이다.
총요소생산성 성장률이 0.3%에 그치는 비관 시나리오에서는 2041~2050년 잠재성장률이 ?0.3%로 낮아지는데, 2041년부터 역성장이 시작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부산 남구 용당부두에 컨테이너들이 잔뜩 쌓여있다. 뉴스1

잠재성장률은 노동과 자본 두 생산요소와 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인 총요소생산성의 합으로 산출되는데, 한 나라 경제의 ‘기초체력’을 보여준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가파르게 낮아지고 있다.
우선, 합계출산율 0.75명(2024년)으로 대표되는 저출생과 고령화가 결합하면서 노동투입 증가세가 둔화된 점이 배경이 됐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총요소생산성의 기여도도 크게 둔화했다는 점이다.
2001~2010년 잠재성장률 4.7%를 기록할 때 총요소생산성의 기여도는 1.9%포인트였는데 2011~2019년에는 총요소생산성 기여도가 0.8%포인트까지 낮아지면서 잠재성장률이 3.1%로 낮아졌다.
총요소생산성이 급락한 배경을 분석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총요소생산성이 크게 하락한 배경은 지난해 말 KDI가 개최한 컨퍼런스 ‘한국경제 생산성 제고를 위한 개혁방안’의 보고서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총요소생산성은 사회 전반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척도로 통상 ‘기술진보 속도’와 ‘생산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좌우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선 ‘따라잡기’ 전략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분석이다.
1960~1970년대 경제개발 초기 단계에서 일본 등의 생산기술을 모방하고, 사회·경제 제도도 적극 참고해 발전을 이뤘지만 선진국과 기술 격차가 축소되면서 기술진보 속도가 점차 둔화됐다는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했지만 양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효과는 눈에 띄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특히 교육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는 점이 문제라고 봤다.
기존 ‘따라잡기 모방경제’에서는 주입식 교육이 효과적이었던 반면 이제는 ‘창의형 인재’가 필요한데 여전히 교육시스템은 경직적이라는 것이다.
실제 고등교육 이수율은 63개국 중 5위 이내로 세계 최상위권인 반면 대학교육 경쟁력은 63개국 중 50위권 내외로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자원배분의 효율성도 떨어지고 있다.
비슷한 기술수준 등을 갖췄더라도 자원의 합리적 배분 여부에 따라 발전 양상이 달라진다.
소련의 경우 과학기술이 발전했지만 합리적 배분시스템 부재로 붕괴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과도한 진입규제들이 생산성 향상을 막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미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있는 특정 이해관계자들이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쇼핑몰 진입에 대한 ‘골목상권’의 반발, ‘우버’ 및 ‘타다’의 시장진입에 대한 택시업계의 반발, ‘로톡’ 등 플랫폼 서비스어 진출에 대한 변호사 업계의 반발, 의대정원 확대에 대한 의사의 반발이 대표적이다.

노동 시장의 경직적 규제도 걸림돌로 지목됐다.
보고서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본인이 속해 있는 직장의 직원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돼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 전체로 볼 때 이런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고 짚었다.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가 비정규직과의 이중 구조를 심화시키고, 연공서열 위주의 경직적 임금체계가 필연적으로 고령층 임금을 생산성 대비 과도하게 책정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정년연장을 저해하는 부메랑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특히 신속한 구조개혁을 저해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정치 환경의 변화를 지목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가능했던 정부 주도 개혁이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게 됐고, 국민적 동의가 중요해지면서 개혁을 추진하기 어려운 환경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광우병 파동 등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겪으면서 개혁적 정책들은 크게 위축됐다”면서 “지난 10~20년간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인공지능(AI) 시장의 혁명적 변화, 무역질서의 급변 등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굵직한 개혁을 추진하는 데 적극적이지 못해왔던 것으로 보이며 2010년대의 총요소생산성의 하락은 그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저출생·고령화로 향후 생산연령인구가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술진보 둔화, 합리적 자원배분의 실패, 이해관계자 반발 극복할 수 있는 합의시스템 부재는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정의·평등과 같이 추상·관념적 가치에 대한 담론이 성장·효율과 같은 구체적·실용적 개념에 대한 담론을 압도하기 시작한 지난 10~20년간의 우리 사회 분위기가 생산성 제고를 위한 개혁을 지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은 아닌지도 되돌아볼 대목”이라면서 “당장의 경제성과에만 집착해 구조개혁을 소홀히 할 경우, 10~20년 뒤 우리는 현재보다 더 어려운 경제상황에 직면해 또다시 지난 10~20년간 우리가 준비해 온 것이 없음을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