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소송 진행 속 무효 심판도 청구
한화세미텍·한미반도체 갈등 골 깊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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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C본더 시장을 놓고 한화세미텍과 한미반도체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사진은 김동선 한화세미텍 미래비전총괄 부사장(왼쪽)과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 /한화·한미반도체 |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반도체 장비 시장을 놓고 한화와 한미반도체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특허 침해 여부와 관련해 소송전을 앞두고 있는데, 결국 봉합 없이 법적 다툼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서 막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한화는 무효 심판을 청구하며 빠르게 사태를 마무리하려는 모습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세미텍은 현재 특허심판원에 한미반도체의 TC(열압착)본더 관련 특허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무효 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한미반도체가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TC본더 특허가 무효라는 점을 입증해달라는 내용이다. TC본더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을 위한 필수 장비로, 인공지능(AI) 시장 급성장 및 HBM 수요 증가에 따라 성장성이 큰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간 한미반도체는 TC본더 세계 점유율 1위(약 70%)를 차지해 왔고, 한화세미텍은 지난 2020년 시장에 진출한 후발주자다.
앞서 한미반도체는 지난해 말 한화세미텍이 TC본더 장비 특허를 침해했다며 특허권 침해 금지 및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기술 관련 재판 특성상 내용 검토와 자료 제출이 지연되면서 아직 첫 재판이 열리지 않고 있다. 그 사이 두 회사 간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고, 재판은 준비 절차가 끝나는 대로 진행될 예정이다. 한화세미텍은 한미반도체가 지목한 해당 특허의 경우 이미 널리 사용되는 기술이라며 특허 침해가 아니라고 반박해 왔다.
한화세미텍 입장에서 이번 무효 심판 청구는 소명 또는 신속한 절차 마무리를 위한 핵심 카드다. 법적 다툼이 시작되면 길게는 2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시장 진입에 성공한 후발주자로서 추진력을 얻어야 할 시점에 이러한 리스크를 장기간 떠안고 있는 것은 큰 부담이다. 업계는 특허 무효 심판이 이르면 6개월 내 결론이 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허가 무효로 결정되면 특허 침해 소송이 기각되며 법적 다툼이 빠르게 끝날 것이란 관측이다.
한화세미텍 측은 "경쟁사의 일방적인 특허 침해 주장을 조금 더 신속하게 바로 잡기 위해 무효 심판을 청구했다"며 "기업 신뢰도와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하루빨리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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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화세미텍의 SK하이닉스 TC본더(사진) 납품 계약 이후, 한미반도체가 한화세미텍을 공개 저격하는 등 날을 세웠다. /한화세미텍 |
일련의 갈등 과정 속에서 한화세미텍과 한미반도체 간 앙금은 더욱 깊어지는 분위기다. 한미반도체는 특허 소송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지만 기술력, 경쟁력과 관련해 설명할 때 수시로 후발주자를 언급하며 견제구를 던져 왔다. 앞서 한미반도체는 2021년 한화세미텍으로 이직한 전 직원을 상대로 부정 경쟁 행위 금지 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한화세미텍이 지난 3월 SK하이닉스의 품질 검증 단계를 최종 통과해 TC본더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한 이후 한미반도체 측이 더욱 감정적으로 격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화세미텍이 HBM용 TC본더를 고객사에 실제 납품하는 건 당시가 처음으로, 업계에서는 한미반도체의 시장 독점 구도가 깨졌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당시 한화세미텍 측은 "시장 진입의 첫 신호탄에 불과하다"며 추후 추가 성과를 암시했다.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은 한화세미텍의 TC본더 계약 체결 소식이 전해진 며칠 후 "후발업체인 ASMPT(싱가포르 장비사), 한화세미텍과는 상당한 기술력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ASMPT도 그랬듯이 SK하이닉스로부터 수주받은 한화세미텍도 결국에는 유야무야, 흐지부지하게 소량의 수주만 받아 가는 형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사를 공개적·직접적으로 저격한 이례적인 행보다.
한화세미텍 측도 가만히 지켜보지만은 않았다. 한미반도체 임원이 한 방송에서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는 한화세미텍의 TC본더 사진을 두고 'TC본더가 아닌 플립칩 본더'라고 주장한 부분과 업력·개발 인력에 대해 허위 사실을 말한 부분을 문제 삼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갈등 국면이 추후 SK하이닉스를 포함한 삼각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에 손을 내민 이후 상주 인력을 철수시키고 TC본더 가격 인상을 요구하는 등 한미반도체가 강수를 두면서, 이미 SK하이닉스·한미반도체 간 동맹에 균열이 생겼다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현재 SK하이닉스는 고객사와 관련해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안정적인 HBM 생산 확대를 추구하는 상황에서, 한미반도체 독점이 아니라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기조는 앞으로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rocky@tf.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