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대 4' 이사회 속 주도권 확보 필요…지분 여전히 높아
캐피탈콜 통한 차입금 우려 해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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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에서 열린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 이후 소강상태에 접어든 경영권 분쟁이 최근 MBK파트너스의 주주 소송으로 다시 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남윤호 기자 |
[더팩트｜이한림 기자]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진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던 MBK파트너스가 주주총회 이후 잠잠하던 분위기를 뒤로 하고 다시 움직이고 있다. 고려아연 최대주주로서 합법적인 주주소송을 통해 고려아연의 투자 의혹을 제기하고, 고려아연 경영진의 인사나 사업적 추진 건들에 대해서는 주주 가치를 저해한다고 판단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MBK파트너스의 특수목적법인(SPC)인 한국기업투자홀딩스는 최근 고려아연 경영진을 대상으로 주주대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박기덕 대표 등이 지난해 11월 이사회 결의 없이 회사가 보유한 ㈜한화(상장명 한화) 주식을 차익을 볼 수 있었음에도 저가로 팔아 손해를 입혔다는 취지다.
고려아연은 2022년 한화와 사업 제휴를 위해 상호주를 보유하기로 협약을 맺을 때 한화 주식을 주당 2만8850원에 취득했다.
이후 고려아연은 한화 주식을 처분제한 기간(3년)이 1년이 남았음에도 지난해 말 한화 계열사인 한화에너지에 주당 2만7950원에 매도했다. 이에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이 한화 주식을 매수했다가 매도하면서 취득 원가 대비 약 50억원의 손해를 봤다는 주장이다.
MBK파트너스도 그간 고려아연 감사위원회에 한화 주식 처분 경위를 조사하고 최 회장, 박 대표 등 손해 발생에 책임이 있는 인사들은 배상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다만 한 달이 넘도록 조치가 없어 직접 행동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MBK파트너스 관계자는 "마땅히 프리미엄을 받아야 할 한화 주식을 헐값에 처분해 고려아연과 주주에 큰 재산적 손해를 입혔다. 최 회장이 경영권 박탈 위기에 몰리자 주요 주주인 한화 계열사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자사 주주 전체의 이익에 반한 결정을 내린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고려아연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고려아연 측은 "당시 한화 주식을 한화에너지에 매각해 약 1519억원을 확보했으며 이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조치였다"며 "거래는 시가 기준에 따라 법적 절차를 준수해 진행됐고, MBK가 ‘아니면 말고’식의 묻지마 소송과 허위 주장으로 기업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 최대주주로서 회삿돈이 손해 보는 투자로 이어졌다면 투자를 집행한 경영진이 마땅히 책임져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고려아연 한화 주식을 지금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가정하면 당시 매각으로 인한 손실은 고려아연이 한화 주식 매도로 확보했다고 밝힌 1519억원에 육박한 1307억원에 달해 엄연한 손실이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26일 종가 기준 한화 주가는 5만2900원으로 매입가 대비 83.36%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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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K파트너스는 지난 9일 고려아연 이사회 일원으로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이사(가운데)의 대표이사 재선임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서예원 기자 |
◆ '불편한 동거' 속 갈등 격화 조짐…법원 판결·집중투표제 변수 주목
뿐만 아니라 MBK파트너스는 이사회 일원으로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지난 8일 박기덕 대표가 이사회를 통해 대표이사로 재선임되자 다음 날 박 대표의 재선임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낸 게 대표적이다.
당시 MBK파트너스 측은 "박 대표는 2024년 10월 30일 2조5000억원의 유상증자 발표 과정에서 부정거래를 한 혐의를 받고 서울남부지검의 고려아연 압수수색에서 자본시장법 위반 피의자로 적시된 인물"이라며 "이사회 스스로 경영진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감시, 견제 등 본연에 의무와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MBK파트너스의 박 대표 재선임 반대 입장은 지난 3월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MBK파트너스·영풍 연합 측 이사 후보 4명이 고려아연 이사회에 진입한 후 처음으로 낸 입장으로 주목을 받았다.
1분기 말 기준 고려아연 이사회는 기존 고려아연 측이 11명, 직무정지 4명, MBK파트너스·영풍 연합 4명으로 총 19인으로 구성돼 있다. 이는 고려아연 경영진이 정기 주주총회 전날 손자회사 선메탈코퍼레이션(SMC)를 통해 순환출자 구조를 형성하면서 최대주주인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해 만들어진 11대 4 형태다.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이 이사회 안에서 소수 의견이기 때문에 당장 주도권은 고려아연 경영진이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박 대표의 재선임을 반대하거나 한화 주식 처분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최대주주이자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주주와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지적을 아끼지 않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최근 MBK파트너스의 조치들이 개인주주들의 지지를 얻는다면 경영권 분쟁에 대한 주도권을 다시 가져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고려아연이 올해 정기 주주총회를 더 이상 열 수 없기 때문에 당분간 11대 4 이사회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입장이나, 주주 다수의 마음을 얻은 것을 전제로 다음 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제가 도입된다면 지분율에 따라 의결권이 부여돼 이사회 내에서도 아군을 늘릴 수 있다는 해석에서다.
집중투표제는 주식 1주당 선임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이 부여되기 때문에 지분이 높을수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고려아연 지분은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이 40.97%, 최윤범 회장을 포함한 특수관계인 지분이 34.35%로 형성돼 있다. 소강상태였던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다시 시장 주목을 받으면서 투자금이 돌고 소액주주 지분, 중립지분으로 분류된 기관들의 향후 표심에 따라 판도가 바뀔 가능성도 남아있는 셈이다.
아울러 MBK파트너스는 경영권 분쟁에 쓰인 대량의 차입금 우려도 일부 해소하면서 채무 리스크도 개선하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나서면서 NH투자증권에 빌렸던 약 1조6000억원 중 일부를 지난 25일 펀드 캐피탈콜(투자자 자금 요청)을 통해 상환했다. 전체 상환금 중 6000억원을 지난 13일 NH투자증권으로부터 주식담보대출로 전환해 연장했기 때문에 남은 1조원가량을 캐피탈콜로 조달한 형태다. 대출 연장 과정에서 금리가 오르며 부담은 다소 늘었으나, 급한 불은 껐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맞불 공개매수와 장외 비방전으로 8개월가량 이어진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정기 주주총회 이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으나, MBK파트너스가 한화 주식을 매도한 고려아연 경영진을 상대로 주주소송을 걸면서 갈등이 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영풍의 의결권을 배제한 고려아연 주주총회를 무효하는 가처분도 2심이 진행 중이며, 19인으로 이사 수 상한을 제한하는 안건도 효력을 정지해달라 가처분을 낸 상태다. 법적 분쟁이 진행되는 동안에 양측의 공방전은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