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정비창전면 제1구역 재개발 시공권을 둘러싸고 포스코이앤씨와 HDC현대산업개발이 치열한 수주전을 벌이고 있다.
양사가 매일 새로운 조건을 내놓으며 치고박는 형국이다.
다른 사업장에서 보기 힘든 파격 조건에 "수주해도 남는 게 없는 수준"이라는 말도 나온다.
단순한 '수주전'을 넘어, 양사가 처한 위기에서 벗어날 '사활을 건 승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다.
용산정비창 전면1구역 재개발 사업은 지하 6층~지상 38층 규모로 아파트 777가구, 오피스텔 894실, 상업·업무시설이 조성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조합이 내건 사업비는 약 9558억원이다.
조합은 다음 달 14일 총회를 통해 최종 시공사를 결정한다.
2022년 광주 학동과 화정동 사고를 잇따라 겪었던 HDC현대산업개발은 그동안 대규모 정비사업에서 사실상 '블랙리스트'에 가까운 대접을 받은 적이 많았다.
불법홍보를 이유로 입찰 제한을 당하거나,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사업장에서 다른 회사가 단독시공을 맡고 현산은 자재구매 등 간접적 역할만 해달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최근 서울시로부터 영업정지 1년의 행정처분을 받으며 '법적 리스크'가 부각되기도 했다.
이번 수주전에서 HDC현산은 절박함을 동력 삼아 연일 파격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이주비 최대 20억 원 보장, 사업비에서 양도성예금증서(CD)+0.1% 금리, 공사비 3.3㎡당 858만원 등을 제안하며 조합원을 설득하고 있다.
또 '더 라인 330'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앞세워, 광주 사고로 실추된 '아이파크' 이미지도 일단 배제했다.
업계 최초로 하자보수 보증 기간 30년을 선언하고, 스카이 커뮤니티 브릿지라는 수평형 랜드마크 설계를 통해 '달라진 HDC'를 강조하고 있다.
'600가구 한강뷰' 설계와 용산역과 신용산역 연결을 골자로 하는 '통합 연결형 개발안'도 제시했다.
글로벌 복합개발 성공 사례인 일본의 롯폰기힐스처럼 만들겠다는 얘기다.
HDC현산은 광주 사고 이듬해인 2023년 정비사업 수주액이 1794억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1조3332억원으로 반등한 데 이어 올해는 9934억원을 기록 중이다.
만약 용산 정비창 전면제1구역 시공권을 확보한다면 사고 이후 정비사업에서 단일 사업장으로는 가장 큰 수주를 기록하게 된다.
포스코이앤씨도 최근 광명 신안산선 터널 붕괴 사고로 치명상을 입었다.
구조물 붕괴로 1명이 사망하고, 전체 공정에 차질이 빚어진 이 사고는 여전히 국토교통부 조사가 진행 중이다.
토목에서 발생한 사고지만 기업 신뢰도와 이미지까지 실추되는 위기를 겪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용산정비창 전면 제1구역을 서울 동남권 핵심지로 진입하는 '관문'이라는 마인드로 전사적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오티에르 용산'이라는 하이엔드 브랜드를 통해 프리미엄 이미지 회복을 노린다.
추가 이주비에 담보인정비율(LTV) 160%를 적용하고, 전체 사업비 4조원 책임조달, 1조5000억원의 사업촉진비 무보증 조달 등 막강한 자금력을 무기로 내세웠다.
공사비는 3.3㎡당 893만 원으로 HDC현산보다 다소 높다.
공사비 지급 유예 18개월, 분양수입금 상환 구조 등 자금 운용의 유연성은 강점으로 꼽힌다.
유엔스튜디오(UNStudio)와 협업한 독창적인 외관 디자인과 자연경관을 고려한 특화 설계를 도입한다.
9개 동 전 가구에서 한강 조망이 가능하도록 배치한 '전(全) 한강조망' 전략도 핵심이다.
단순 시공을 넘어 오피스 공실 리스크를 직접 부담하고 활성화하겠다는 '오피스 책임 임차제'도 제시했다.
용산정비창 전면 제1구역을 포스코이앤씨가 가져가게 된다면 5년 연속 정비사업 수주액 4조원 이상을 기록하게 된다.
포스코이앤씨는 최근 2년 연속 업계 2위의 수주액을 달성했으며, 올해도 3조4532억원으로 삼성물산(5조213억원)에 이어 2위를 기록 중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양사는 모두 절박한 상황이기에 조건 하나하나에 '출혈경쟁' 이상의 전략이 깔려 있다"며 "실익보다 이미지 쇄신이 더 중요한 싸움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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