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올린 ‘이재명호’…美 관세 극복 '신중론'더팩트 기사제공: 2025-06-06 09:18:01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 선서식에 참석해 취임사 하고 있다. / 뉴시스

[더팩트ㅣ세종=정다운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미국 관세' 극복이라는 외교·통상 시험대에 올랐다. 외교 안보, 내수 경기 침체 등 난제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가 임기 초반부터 거센 외풍에 직면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협상이 우리나라에 유리한 국면으로 흐를 수 있는 만큼 '신중론'에 기반을 두고 실익을 챙겨야 한다고 제언했다.

◆ 상호관세 유예기간 코앞…협상 속도전?

지난 4일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 2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득표수는 1728만7513표(득표율 49.42%)로 역대 최대 기록이다.

압도적인 의석수(민주당 167석)를 바탕으로 역대 ‘가장 강력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이 대통령 앞에 놓인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만 않다. 미 관세, 외교 안보, 내수 경기 침체 등 굵직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급하게 치러진 대선이라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것도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당분간 전 정부 인사들과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야 해서다.

이 중 가장 시급한 과제로는 통상 문제가 거론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취임 후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현재 무역 합의에 도달한 나라는 영국뿐이다.

지난 3일(현지시각) 미국은 모든 국가에 4일까지 협상과 관련한 '최상의 제안'을 제출하라는 서한을 발송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부과하는 관세를 기존 25%에서 50%로 두 배 인상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 4월 '장관급 2+2' 협의를 통해 다음 달 9일 전까지 줄라이 패키지(7월 포괄합의)를 마련하기로 했지만, 아직 큰 진전은 없는 실정이다.

정부에 따르면 현재 실무급에서 구체적인 협상을 위한 준비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앞서 미 무역대표부는 지난 3월 무역장벽보고서(NTE) 보고서를 공개하며 △30개월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금지 △유전자변형생물체(LMO) 승인 규제 △플랫폼 규제 법안(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 제정 추진 △개인정보보허법상 개인정보의 국외 이전 제한 △수입차 배출가스 규제 △ 구글 정밀 지도 반출 등을 한국의 비관세 장벽으로 제시한 바 있다.

협상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이 비관세 장벽으로 지적한 내용이 국내 산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이 예고한 상호관세 유예기간(7월 9일)은 30일 가량 남았다. 촉박한 시간은 이 대통령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지난 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추진했지만 시차 등의 이유로 불발됐다.

◆ 전문가들 "미국 상황 불리"…신중론 강조

일각의 우려와 달리 전문가들 신중론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 생각과 달리 미국의 경제지표가 악화하고 있어서다. 상황이 미국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이 대통령에게는 이번 협상이 호재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현지시각)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서명한 복수 포르노 금지법인 ‘테이크 잇 다운’ 법안(Take it Down Act)을 들어 보이고 있다. / AP·뉴시스

지난 4일 미국 민간 고용조사업체(ADP) 전미 고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민간 고용은 전달 대비 3만7000명 증가해 2023년 3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기업의 심리가 급속도로 악화하면서 고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최근 발표를 보면 미국의 경제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며 "트럼프는 이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면 내년 6월 중간선거에서 지지율이 떨어질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프리덤 코커스(강경파) 같은 소수 세력을 제외하면 상원에서도 트럼프와 약간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며 "트럼프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많지 않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협상을 할 거고 우리는 급하게 갈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8일 미 연방국제통상법원(USCIT)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부과를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의거 제동을 걸었다. 항소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항소를 받아들여 현재 효력 정지 결정을 내린 상황이지만 불확실성만 커졌다는 평가다. 최종 결정은 연방 대법원에서 내릴 전망이다.

때문에 이번 정부에서는 대미 관세 협상이 속도전이 아닌 신중론으로 전면 개편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 단장은 "관세 관련 미 연방대법원 문제도 남아있고, 유럽연합(EU)도 철강 관세와 관련해 보복하겠다고 발표한 상황을 보면 한미 협상이 당장 진행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당분간은 소강상태가 이어질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현 정부가 실용주의 노선을 취하고는 있지만,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식의 협상이 나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양국의 이해관계가 합의가 안 되면 협상은 지지부진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danjung638@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