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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경제에서 ‘착한가격’이 자리 잡으려면 임대인도 ‘임대료를 낮게 받아야 하니’ 착해야 하고, 종업원도 ‘임금을 낮게 받아야 하니’ 착해야 하고, 사장님도 ‘가격을 낮게 받아야 하니’ 착해야 한다. 사실은 가게 사장님이 착해서 가격을 안 올린 게 아니고 가격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더팩트 DB |
[더팩트 | 김원장 언론인] 서울 외곽의 한 골목길 중식당. ‘착한가격’이라는 자치단체가 수여하는 예쁜 푯말이 붙어있었다. 짜장면 7000원, 탕수육이 14,000원이다. 진짜 착하다. 그런데 이 가격은 식당 주인이 착해서일까.
많은 것들의 가격이 오른다. 지난 2015년부터 2024년까지 10년 동안 한국의 소비자물가는 20.7% 올랐다(e나라지표 기준 누적 소비자물가상승률). 그런데 같은 기간 롤렉스 시계나 에르메스 핸드백처럼 수천만 원씩 하는 고가 제품의 가격은 200% 넘게 가격이 급등했다. 어떤 모델은 사려면 줄을 서야 한다. 매니저가 단골들에게만 따로 전화를 해서 제품이 입고됐다고 귀띔을 해준다.
구매력이 아주 높은 소비자들이 찾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은 물가인상률을 몇 배씩 뛰어넘게 올랐다. 2010년 송도의 ‘잭니클라우스 골프장’은 10억 원의 초고가 회원권 가격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지금은 29억 원을 넘어간다. 최근에는 회원들에게 연회비 2000만 원씩을 따로 내도록 했는데도 회원권 가격이 계속 오른다. 골프장 공급이 크게 부족하지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이들의 소득이나 구매력이 그만큼 올랐다는 뜻이다.
그런데 동네 미용실은 파마 가격을 5000원 올리는 것도 어렵다. 종종 들리는 고속터미널 근처 해장국 맛집은 그동안 가격을 제법 올렸는데도 1만 원이다. 고속터미널을 오가는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반영한다. 단돈 1000~2000 원만 올려도 소비자들이 발길을 돌린다. 왜 그럴까. 통계청이 내놓은 ‘1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그 이유가 더 자세히 보인다.
소득 1분위(하위 20%)가구는 매달 114만 원을 벌었다. 그런데 157만 원을 소비했다. 매달 43만 원이 적자다. 그러니 저렴한 식당이나 미용실만 찾아다닐 수밖에 없다. 2분위 가구(소득 상위 20~40%)는 매달 275만 원을 벌고 241만 원을 지출했다. 흑자다. 하지만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가구원수는 2.2명. 2.2명이 한달 241만원으로 산다는 뜻이다. 당연히 허리띠를 졸라맨다. 가계 지출이 전분기 대비 또 1.3% 줄었다.
특히 2분위 가구의 의류·신발 지출은 13.8%나 줄었다. 보건 지출도 8.4%나 줄었다. 월세나 전기요금 교통비 등은 줄이기가 힘드니, 옷을 덜 사고 병원도 덜 갔다는 뜻이다. 우리 전체 가구의 40%의 지갑 형편이 이런데 동네 해장국 가격 2000원 올리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올해 1분기 가계소득 4.5%↑…근로·사업·이전 소득 모두 증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실제 전체가구의 소득이나 흑자 규모는 모두 올랐다. 5분위(상위 20%)가구의 소득이 5.6%나 오르면서 평균을 끌어올렸다. 통계와 숫자는 이렇게 골목길에 사는 평범한 서민들의 삶을 가린다.
시장경제에서 ‘착한가격’이 자리 잡으려면 임대인도 ‘임대료를 낮게 받아야 하니’ 착해야 하고, 종업원도 ‘임금을 낮게 받아야 하니’ 착해야 하고, 사장님도 ‘가격을 낮게 받아야 하니’ 착해야 한다. 사실은 가게 사장님이 착해서 가격을 안 올린 게 아니고 가격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논어에 ‘모자라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하라’는 말이 있다. 자꾸 격차가 벌어진다. ‘착한가격’은 그 수많은 그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