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민감국가 지정 원인도 모르는 정부 “리더십 공백·외교대응 부재 인한 참사” [뉴스 투데이]세계일보 기사제공: 2025-03-17 18:49:45

현지 공관, 경위 파악 총력
사전 논의도 사후 설명도 없어
국내 핵무장론 확산 따른 경계
비상계엄 사태 여파 등 원인 꼽아

미국 정부가 한국을 원자력·에너지·첨단기술 협력이 제한되는 민감국가 명단에 포함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지만, 그 원인이나 배경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민감국가 지정 시점은 1월 초순이다.
당시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잇따른 탄핵으로 국내 정치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장기화한 리더십 공백과 외교 대응 컨트롤타워 부재가 부른 참사라는 분석이다.

17일 외교부에 따르면 정부는 현지 공관을 중심으로 경위를 파악하는 데 총력을 다하는 한편,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긴급 방미도 검토하고 있다.
미국 측에서는 한국이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에 오른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상태다.
두 달 전 민감국가 지정 때부터 현재까지 정부는 합당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 달 15일 발효 전 한국이 민감국가 명단에서 빠질 수 있도록 미국과 적극 협의한다는 게 정부 입장의 전부다.

민감국가 제외 방안 모색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왼쪽 두 번째)이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현안간담회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최 권한대행은 간담회에서 미국 에너지부(DOE)가 원자력·에너지·첨단기술 협력이 제한되는 민감국가 명단에 한국을 포함한 것과 관련해 이달 중 미국 측과 접촉해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제공

외교부가 주미대사관 등 채널을 총동원해도 민감국가 지정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듣는 데는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CL은 에너지부가 자체 관리하는 목록이지만, 국방부와 중앙정보국(CIA) 등도 관여하는 보안 사안이라 미 국무부도 관련 정보를 파악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라는 설명이다.
에너지부를 상대하는 한국의 카운터파트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산업통상자원부가 적합하다.

현재까지 전문가 분석 등을 종합하면 민감국가 지정 원인으로는 국내 핵무장론 확산에 따른 경계, 12·3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 한·미 간 묵혀온 원자력 기술 관련 지식재산권 분쟁 등이 꼽힌다.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해 한국을 지켜볼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미국으로부터 정확한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배경을 추론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외교부 안팎에서는 이번 결정이 정치적 사안보다는 기술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졌을 수 있다고 보는 분위기도 있다.
한국전력·한국수자력원자력과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 간 원전 기술 분쟁이 배경일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한·미는 해당 지식재산권 분쟁을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전 극적으로 타결했는데, 아직 이런 부분이 반영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탄핵 정국이 길어지면서 커지던 외교 참사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미국은 민감국가 지정 관련해 동맹인 한국과 사전 논의는 물론 사후에도 설명해주지 않았고, 우리 정부도 이 사실이 알려진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배경을 파악하지 못했다.
대통령, 국무총리가 모두 직무정지된 상태에서 외교 대응 공백이 발생한 탓으로 볼 수 있다.
정부 주도로 선포된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할 때 미국으로서는 현 정권이 유지되는 한 민감국가 지정 관련 논의를 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