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군비 경쟁이 시작되고 있으며 이는 우리를 위험한 길로 이끌고 있다.
80년 전인 어느 8월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수만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핵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2025년 현재 새로운 핵 군비 경쟁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에는 러시아, 중국, 북한 같은 기존 핵강국들 때문이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 전쟁과 미국 방위우산 철수 위협이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그 결과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더욱 위험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억제해왔던 기존의 안보 체계가 붕괴될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수십년 동안 아시아 국가들은 워싱턴의 핵 억지력 제공 약속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이제 더는 이를 기대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일본과 한국처럼 오랫동안 미국의 동맹이었던 국가들은 자국의 핵무장을 추진할 경우 발생할 경제적, 정치적 비용을 계산하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이미 핵탄두를 계속 확장하고 있었으며 특히 최근 카슈미르 지역에서 발생한 긴장 고조로 인해 불안정한 갈등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방위 협정에서 손해를 보고 있으며 미국의 보호 덕분에 세계가 안전해지는 동안 다른 경제권이 더 많은 이익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일면 타당한 지적이지만 그는 역사의 교훈을 간과하고 있다.
워싱턴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 미국 사회는 깊은 성찰을 거듭했고 그 결과 이 같은 비극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미국 사회의 반성으로 해리 트루먼 대통령 이후 모든 미국 대통령들의 목표는 핵무기의 확산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왔다.
이러한 목표는 상당 부분 협상을 통한 협정과 조약을 통해 달성됐다.
정책은 효과가 있었다.
이 덕분에 오늘날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는 9개국에 불과하다.
많은 나라가 핵무기 제조 능력을 갖췄음에도 더 이상의 확산을 막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더 위험한 시대를 열고 있다.
그는 2016년 대선 당시 일본과 한국이 자체 핵무장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발언했으며 이러한 발언은 여론에도 영향을 끼쳤다.
한국 통일연구원이 2024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 10명 중 6명이 핵무장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이 자체 핵무장을 추진하게 될 경우 연쇄 반응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세인트 프란시스 자비에대학교의 제이미 레빈, 조영원 교수는 지적한다.
일본은 역사적 아픔 때문에 핵무기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이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본은 완전한 핵 연료 주기를 보유하고 있어 이론적으로 6개월 이내에 수천개의 핵탄두를 제작할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가장 우려되는 국가 중 하나다.
최근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으로 수십명이 사망하는 등 수년 만에 최악의 폭력 사태가 발생하면서 양국 간 충돌 위험은 더욱 커졌다.
지금까지 양국은 외교적 대응에 그치고 있지만 언제든 갈등이 격화될 수 있는 불안 요소는 여전하다.
상대적으로 안전지대였던 동남아시아에서도 위험은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다.
1995년 방콕조약은 동남아시아를 비핵지대로 설정해 회원국들이 핵무기를 개발, 제조, 획득, 보유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강대국들이 핵무기 보유량을 늘릴 경우 동남아시아에 미치는 파급 효과로 인해 다른 국가들 역시 자체 핵기술 개발을 검토하거나 새로운 방위우산을 찾아야 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예측 불가능성이 초래한 리더십 공백을 적극적으로 채우고자 할 것이다.
미국은 신뢰할 수 있는 안보를 보장하지 못하는 대신 아시아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그들의 방위 야망을 해결해야 한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서는 2023년 한국과 함께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을 출범해 불안감을 어느 정도 완화했다.
이러한 노력을 일본과 같은 다른 동맹국으로 확대해야 한다.
미국의 억지 전략을 따르도록 동맹국들을 설득해야 한다.
소국들은 대국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주목한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안정자로서 역할 할 기회를 갖고 있으며 그 역할을 중국에 넘겨줘서는 안 된다.
한때 세계는 미국을 안전의 수호자로 여겼다.
하지만 2025년 현재, 그 신뢰는 흔들리고 있다.
이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반드시 회복해야 할 과제다.
카리슈마 바스와니 블룸버그 칼럼니스트·전 BBC 아시아 수석 앵커
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Asia Is Contemplating a Growing Nuclear Future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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