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서울역 역사 서쪽 기둥 아래 15개의 텐트가 모여있는 텐트촌이 있다.
지난 1일 찾아간 이곳에선 노숙인 12명이 몸 하나 겨우 뉘일만한 크기의 텐트에서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었다.
허리 높이 텐트에서 지내 온 엄모씨(50)는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못 씻는 경우도 생겨서 사람들이 없는 새벽에 일어나서 씻을 수밖에 없다"며 "머리도 빨리 감아야 한다"고 했다.
텐트촌 양옆에는 공사장과 물류 하역장이 있고,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도 인접해 있다.
텐트는 차갑고 축축한 바닥과 쥐들을 피하기 위해 판자 위에 설치돼 있었고, 옆에는 짐을 담은 캐리어가 여러 개 묶여 있었다.
이곳에서 '위생'은 사치다.
열악하기 짝이 없지만 텐트촌의 노숙인들은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
쉼터, 쪽방, 고시원 등 텐트촌보다 환경이 좋은 곳들이 있지만, 비용을 낼 여력이 없거나 단체 생활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다.
노숙인 지원시설인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 따르면 서울역 일대에는 텐트촌을 포함해 200여명의 노숙인이 지내고 있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는 서울역 일대의 노숙인을 보호하고 주거, 의료, 일자리 지원 등을 통해 자립을 지원해 왔다.
주간·야간·심야 아웃리치 활동을 통해 노숙인들을 직접 방문해 관계를 형성하고, 생활 물품을 전달하거나 복지 서비스 상담을 진행한다.
그러나 센터는 취침 시간이 정해져 있고 외출, 외박이 제한된다.
때문에 쉼터 시설에 적응하지 못하고 서울역으로 돌아오는 노숙자가 많다고 한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관계자는 "쉼터 시설로 가는 노숙인들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 단체 생활에 답답해한다"며 "강제로 지원정책을 진행하지 않고, 노숙인이 최소한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도움을 요청할 경우 지원 상담을 진행한다"고 했다.
텐트촌에 사는 김모씨(68)는 "텐트에서는 돈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쪽방촌이나 고시원은 돈을 내야 하질 않느냐"면서 "나는 길바닥이나 지하에서도 막 자던 사람이지만 쉼터에서 5명이 같이 지내는 것은 불편할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곳곳이 부서져 테이프로 땜질을 해놓은 텐트에서 지내는 진모씨(60)도 "방 한 칸 구할 돈도 없고, 수입이 없어서 쪽방, 고시원은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텐트촌을 떠나지 못한 노숙인들은 온갖 행정 사각지대에 놓인다.
충정로 텐트촌이 있을 때부터 노숙 생활을 이어와 주민등록이 말소된 배모씨(73)가 대표적이다.
배씨는 "건축일을 한다고 공중에 매달려 위험한 일을 하다 보니 다쳤다"며 "주민등록도 말소됐고 휴대폰도 없어 병원을 갈 수도 없다"고 했다.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경우도 부지기수다.
엄모씨는 "가족들에게 맞아서 팔, 다리, 허리에 수술을 세 군데나 하게 됐다"며 "일을 따로 못하니 당분간은 이곳에서 지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숙인에게 제공하는 주거 옵션이 제한적인 현실을 지적했다.
남 교수는 "쪽방 등 노숙인에게 지원하는 주거 시설이 열악한 구조임에도 최저 주거급여를 넘는 경우가 많고, 법적 최저 주거 기준을 충족하는지도 불분명하다"며 "민간, 주거복지센터 차원에서 진행되는 주택 사업도 있지만, 지자체의 관리가 더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은서 기자 lib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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