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사상 첫 미국인 교황 레오 14세
균형 잡힌 중도파 보수, 진도 중재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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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강복의 발코니'에 모습 드러낸 교황 '레오 14세' /뉴시스 |
[더팩트｜오승혁 기자] "지금까지 언론이 맞힌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콘클라베를 앞두고 언론에서 많은 예상을 내놓겠지만 틀림 없이 모두 빗나갈 것"이라던 유흥식 추기경(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의 말처럼 2000년이 넘는 가톨릭 역사상 최초로 미국 출신 교황이 탄생했다.
바티칸 현지 시각으로 8일 오후 6시 8분, 한국 시각으로는 9일 새벽 1시 8분 시스티나 경당 굴뚝에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와 동시에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 선출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1시간 20여분이 흐른 뒤 도미니크 맘베르티 수석 부제 추기경이 성 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 나와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영어로 "We have a Pope"로 번역되는 라틴어를 외치며 제267대 새 교황의 선출 사실을 전 세계 14억 가톨릭 교인들에게 알렸다.
하베무스 파팜이 광장에 울려 퍼진 후 새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고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며 평화를 교황 취임 후 첫 메시지로 전했다. 새 교황으로 선출된 이는 교황청 전 주교부 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Robert Francis Prevost)로 교황명으로 레오 14세(Pope Leo XIV)를 선택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번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로 꼽히지 않았던 만큼 그의 등장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전 세계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톨릭 최고 지도자인 교황까지 미국 출신을 뽑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여겨졌는데 이번 콘클라베에 참석한 추기경들이 '균형 잡힌 중도파'로 평가 받는 레오 14세를 선출해 국경을 넘는 화합을 추구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레오 14세 교황 탄생 전에는 오랜 기간 외교 업무를 담당했던 이탈리아의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과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노선을 계승했다고 평가 받는 필리핀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 이탈리아의 마테오 주피 추기경이 새 교황 유력 후보로 언급된 바 있다.
다만 이런 대중의 예측과 달리 레오 14세 교황이 선출됐다.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지만 페루의 빈민 지역에서 오랜 세월 사목 활동을 하며 이주민과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인 레오 14세 교황은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과 같이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레오 14세 교황은 성당에서 교리교사로 일했던 아버지를 따라 가톨릭 신앙 공동체 생활을 했다. 프랑스·이탈리아 혈통 아버지와 스페인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를 유창히 구사하며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신학교에 들어가 교황청립 안젤리쿰 대학에서 교회법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신학과 별개로 펜실베니아주 빌라노바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이력도 있다.
페루에서 주로 사목 활동을 한 그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시에 페루 북서부 치클라요 교구 사도 행정관으로 파견된 뒤 이듬해 주교에 올랐다. 이 교구는 빈민가와 농촌 지역을 관할한다. 2023년 추기경으로 임명된 뒤 라틴아메리카 위원회 위원장과 주교부 장관직을 수행했다.
그러나 동성애자에게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던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과 달리 레오 14세 교황은 과거 연설에서 동성애와 대안가족을 언급하며 "서구 언론과 대중문화가 복음에 어긋나는 믿음과 행동을 조장한다"고 말했기에 강한 개혁 노선을 타기 보다는 보수와 진보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주로 맡을 전망이다.
이번 콘클라베에는 추기경 133명이 참석했다. 콘클라베 둘째 날 4차 투표에서 새 교황은 선출됐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은 5번의 투표를 거쳐 이뤄졌던 것과 비교하면 단기간에 결정이 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