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장애 가르는 순간의 차이 [김태정의 진료실은 오늘도 맑음]세계일보 기사제공: 2025-05-10 18:00:00

얼마 전 54세 남성이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앞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다행히 주변을 지나던 사람이 119에 신고했고, 그는 서울대병원 응급실까지 2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 당시 환자는 혼수상태였고, 사지 마비까지 있었다.
호흡도 미약했다.
기관삽관과 함께 뇌 CT를 시행해 보니, 뇌의 후방순환을 담당하는 기저동맥 폐색에 따른 뇌경색이었다.
응급상황인 만큼 즉시 정맥 내 혈전용해제를 투약하고, 곧바로 동맥 내 혈전제거술을 시행했다.

이 모든 치료가 이뤄지기까지 증상 발생 후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환자는 시술 직후 중환자실로 이동했고, 1시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팔과 다리도 스스로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조금씩 회복한 뒤 1개월 후에는 뇌경색 전과 같은 상태로 회복됐다.

뇌졸중의 골든타임은 ‘증상 발생 후 4.5시간 이내’가 맞지만 치료까지 시간이 짧을수록 예후 차이는 2배 이상 난다.

같은 날, 좌측 중대뇌동맥 폐색에 따른 뇌경색으로 병원을 찾은 63세 환자가 있었는데 증상 발생 후 병원에 오기까지 16시간 이상 걸렸다.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 손상이 심했던 그는 초급성기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입원했고, 입원 중 뇌부종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식물인간 상태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같은 날, 같은 이유로 병원을 찾았던 두 사람의 운명을 갈라놓은 것은 얄궂게도 ‘시간’이다.

뇌졸중은 갑자기 뇌혈관이 막히거나(뇌경색), 터지면서(뇌출혈) 발생하는 필수 중증 응급질환이다.
전체 뇌졸중의 약 80%는 뇌경색이다.
뇌혈관이 막히면 1분에 약 200만개의 뇌세포가 죽고, 140억개의 시냅스가 손상된다.
한시라도 빨리 막힌 혈관을 통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뇌경색의 골든타임은 4.5시간이다.
초급성기 치료에서 우선적으로 시행되는 정맥 내 혈전용해제 투약이 가능한 시간이다.
이 약물은 모든 종류의 뇌경색에 사용할 수 있으며, 투약 시 약 10%는 빠르게 증상이 호전되고, 20%는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된다.

두개 내 큰 혈관이 막힌 경우에는 동맥 내 혈전제거술이 시행된다.
이런 중증 뇌경색은 심각한 후유장애를 남기며, 사망률도 50%에서 80%에 이른다.
동맥 내 혈전제거술은 증상 발생 6시간 이내, 뇌영상 결과 등 경우에 따라 24시간 이내에도 치료가 가능하다.

‘4.5시간’이 뇌졸중의 골든타임이지만, 필자는 환자들이 골든타임을 물어볼 때마다 “증상 발생 즉시”라고 답한다.
초급성기 치료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을수록 예후는 2배 이상 차이 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90분 이내 정맥 내 혈전용해제를 투약받은 환자와 150분 이후에 받은 환자 사이에는 3개월 후 혼자 거동할 확률이 2배나 차이 난다.

김태정 서울대병원 신경과·중환자의학과 교수

평소 ‘이웃·손·발·시선’으로 요약되는 뇌졸중 증상을 숙지하고 있어야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
△‘이~’ 하고 웃었을 때 얼굴 표정이 비대칭인 경우(안면마비) △손, 팔,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경우(편측마비) △발음이 어눌하거나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경우(발음장애·실어증) △시선(안구)이 한쪽으로 돌아가 있는 경우(안구편위 증상)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이 네 가지 증상이 전체 뇌졸중 증상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이 중 한 가지 증상이라도 있다면 즉시 119에 신고하고, 뇌졸중 센터를 찾아야 한다.
“골든타임이 4.5시간이니 조금 지켜보자”는 방심은 치명적이다.
뇌세포는 그 사이에도 빠르게 죽어간다.
그 순간의 차이가 당신의 남은 생을 ‘삭제’하거나 ‘장애’로 바꿔 버릴 수 있다.

서울대병원 신경과·중환자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