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및 아시아 지역 난민들의 입국을 금지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백인 59명에 난민 지위를 주고 미국 입국을 승인해 '이중잣대' 논란이 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는 남아공 백인 출신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겸 정부효율부(DOGE) 수장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머스크 CEO는 '아프리카너(Afrikaners·17세기 남아공에 이주한 네덜란드 정착민 후손)'와 연계해 남아공에서 백인들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으며 미국이 이들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앞으로도 남아공 백인들을 대상으로 난민신청을 받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난민 수용 이중잣대 논란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남아공 백인 59명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가 보낸 전세기를 타고 버지니아주 덜레스 공항에 도착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2월 남아공 백인들의 난민지위를 인정하고 미국으로 이주를 희망하는 신청자를 받았다.
이후 불과 3개월만에 미국 입국 및 수용절차를 마치고 전세기까지 보내줬다.
당시 공항에는 크리스토퍼 란다우 미 국무부차관과 트로이 에드거 국토안보부 차관 등이 나와 이들을 맞이하고, 미국 정착 과정 등을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아공 백인들이 흑인 정부에 의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이들의 난민 지위를 인정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남아공에서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며 "백인이든 흑인이든 인종은 내게 상관없다.
다만 지금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대량학살"이라고 강조했다.
남아공 내에서는 최근 정부의 토지 재분배 정책에 백인 농장주들이 반발하면서 인종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남아공 정부는 올해 1월부터 토지수용법을 개정해 과거 백인들에 의해 강제몰수된 흑인들의 땅을 정부가 재수용해 소유권을 바로잡는 토지개혁을 실시 중이다.
이번에 미국에 입국한 남아공 백인들도 토지 재분배 정책에 반발한 농장주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안팎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남아공의 백인들만 난민으로 수용하는 인종차별 정책을 펴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지역과 수단·콩고민주공화국 등 아프리카 분쟁지역 주민들의 난민 입국은 금지하고 있다.
남아공 백인들의 난민 지위 승인 배후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머스크 CEO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머스크 CEO가 남아공 내 백인 농장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아프리카너들과 연계돼 백인들의 역차별 피해를 호소했다는 것이다.
영국 가디언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고문 중 한명인 머스크의 견해가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며 "머스크는 남아공 내 백인들이 피해를 받고 있다고 자주 주장했으며, 그들의 지지자로 여겨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남아공 백인 출신인 머스크 CEO는 아프리카너를 지지하며 그들의 주장을 옹호해왔다.
머스크 CEO는 지난 2월 남아공 정부의 토지수용법 개정에 반대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X(옛 트위터)를 통해 "남아공 정부는 공개적으로 인종차별적인 소유권 법률을 만들었다"며 "남아공 내 백인들은 차별과 폭력으로 대량학살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BBC에 따르면 남아공 내에는 '아프리포럼(AfriForum)', '트란스발 농업연합(Transvaal Agricultural Union)' 등 백인 농장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조직들이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아프리카너다.
남아공 안에는 약 300만명의 아프리카너가 있다.
아프리카너는 남아공 백인 농장주들이 인종갈등 피해를 받고 있으며 백인들을 대상으로 한 흑인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고 주장 중이다.
아프리포럼과 트란스발 농업연합 등은 지난해 남아공 내 백인 농장주 중 인종차별 갈등으로 발생한 강도, 폭행사건으로 60명이 살해됐다고 집계했다.
남아공 정부는 남아공 내 백인들에 대한 차별이나 공격은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오히려 과거 인종차별 정책으로 피해를 본 흑인들을 위해 행해지는 토지개혁에 백인들이 반발하면서 왜곡된 정보가 미국 정부에 퍼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남아공 정부는 지난 12일 성명에서 "국내 백인들은 난민이라 부를 수 없으며 그들에 대한 처우는 국제법상의 박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며 "남아공 국민을 난민으로 미국에 재정착시키는 것은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남아공 내에서 백인들은 여전히 토지의 75%를 차지한 부유층이며 아무런 박해를 받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도 코트디부아르에서 열린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한 자리에서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 등 미국 정부 인사들과 통화를 했는데 남아공 내 개혁반대 세력들이 백인을 피해자로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과거 식민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체제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왜곡하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다만 남아공 정부는 미국으로 가려는 백인들의 출국을 막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남아공 외교부는 "미국이 내린 난민 지위 판단에는 이의를 제기하지만 개인의 이동 및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출국하려는 사람들을 막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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