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트리플A'에서 전격 강등한 배경엔 지속 불가능한 연방정부의 부채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정부 지출이 세수를 초과하는 만성적인 재정적자 속에 국채 발행으로 빚을 메우는 악순환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경고다.
미국은 연간 국방 예산을 초과하는 규모의 이자 상환을 위해 다시 빚을 내야 할 정도로 부채 구조가 비정상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미 국가 부채 문제는 이미 시장에 노출된 위험이라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하지만 3대 신평사의 잇단 미 최고 신용등급 박탈은 세계 최고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 국채가 더 이상 '무위험 자산'이 아니란 신호라는 인식이 시장에 번지고 있다.
무디스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1'으로 하향 조정하며 급증하는 연방정부 부채와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미 재무부, 의회예산국(CBO), 피터슨 재단 자료에 따르면 현재 연방정부의 부채는 약 36조2000억 달러(약 5경원)로 미 국내총생산(GDP)의 123%다.
부채 규모는 2019년 22조7000억달러 수준에서 5년 만에 59% 급증했고, GDP 대비 부채 비율 역시 107%선에서 급등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GDP는 연 평균 2% 내외 성장에 그친 반면, 부채는 10% 이상 빠르게 불어났다.
부채 증가 속도가 경제 성장 속도를 압도하면서 '빚폭탄'이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부채 급증의 배경엔 구조적인 재정적자가 있다.
연방정부는 세수로 충당하지 못하는 지출을 국채 발행으로 메워 왔고, 여기에 사회보장·의료서비스 등 의무지출 확대와 코로나19 당시의 대규모 돈 풀기까지 겹치며 재정 건전성은 더욱 악화됐다.
더 큰 문제는 막대한 부채로 인해 자동 발생하는 이자 지출이다.
CBO에 따르면 2024 회계연도 기준 연방정부의 이자 지출은 약 9490억달러(약 1330조원)로, 국방비(8260억달러)를 사상 처음으로 넘어섰다.
국채 이자는 미국인에게 아무런 혜택도 주지 못하고, 빚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매년 지출되는 고정 비용이란 점에서 정부 예산 항목 중 가장 비효율적인 지출로 꼽힌다.
이자 지출은 현재 전체 연방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4%로 두 번째로 크며 2025년에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재정 전망은 더 어둡다.
무디스는 GDP 대비 연방정부 재정적자 비율이 2024년 6.4%에서 2035년 9%로, 부채 비율이 같은 기간 98%에서 134%로 급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소득세·법인세 감면을 추진하면서 향후 재정적자는 더욱 악화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인상을 세수 감소분을 충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관세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에 불과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번 무디스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 조치를 놓고 월가에서는 연방정부 부채 문제는 이미 노출된 리스크라 시장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고질적인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 문제가 지속되면 중장기적으로 미 경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세계 최고 안전자산인 미 국채와 달러의 지위가 급격히 훼손될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보케 캐피털 파트너스의 킴 포레스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이 경고음일 순 있지만 처음은 아니다"라며 "채권 투자자들은 부채 이슈를 모두 알고 있다"며 시장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봤다.
앞서 피치, 스탠다드앤푸어스(S&P) 역시 2023년과 2011년 미국의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에서 한 단계 낮춘 만큼 시장 혼란은 크지 않으리란 분석이다.
반면 이번 조치가 미 국채 매도를 부추길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정책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프랭클린템플턴의 맥스 고크먼 부사장 겸 최고투자책임자(CI)는 "현재 의회에서 논의중인 (감세) 계획으로 재정적자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며 "투자자들이 국채를 다른 안전자산으로 점진적으로 전환하면서 부채 상환 비용은 계속 상승하고 이는 미 국채 수익률의 위험한 하락 국면, 달러화 추가 하락 압력, 미 주식 매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밴더빌트 로스쿨의 예샤 야다브 교수는 "미 정부의 부채 관리에 대해 점점 더 암울해지는 가장 최신의 전망이었다"이라며 "미국이 본질적인 무위험 자산으로서 세계에서 명성을 유지하려면 필요한 개혁에 시급히 집중해야 한다고 (무디스가) 정책 입안자들에게 보내는 질책"이라고 경고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최근 달러 하락과 관련해 "미국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과 신뢰 상실"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한 때 미 국채 최대 보유국이었던 중국도 미 국채를 계속 내다 팔고 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중국이 보유한 미 국채 규모는 지난 3월 기준 7654억달러를 기록해 전월 대비 189억달러 줄었다.
올해 2월까지만 해도 2위 보유국이었으나 달러 자산 비중을 줄이면서 일본(1조1308억달러), 영국(7793억달러)에 이어 3위로 내려갔다.
이를 놓고 미·중 관세 전쟁을 앞둔 대미 압박용이란 분석도 있지만, 중국이 지난 몇년간 지속적으로 미 국채를 매도해왔다는 점에서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부채에 짓눌리는 미 경제 자체에 대한 경고 신호란 해석도 제기된다.
뉴욕(미국)=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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