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 인종 따라 달라… 국내 수혈시스템 개선 필요”세계일보 기사제공: 2025-05-29 17:35:18

국내 연구진이 혈액 분포가 인종에 따라 다른 만큼, 서양인의 혈액형 분포를 기준으로 설계된 현행 수혈 기준과 분류체계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9일 삼성서울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조덕 교수, 하버드의대 병리과 윤세효 전공의, 전남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임하진 교수 연구팀은 지역별 혈액형 특성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동아시아에서는 AB형의 분포가 5~12%, RhD 음성 분포는 0.1~1%인 반면, 유럽에서는 각각 3~8%, 11~19%로 나타났다.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을 포함한 동아시아는 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역과 달리 AB형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높지만, RhD 음성은 극히 낮았다.

연구팀은 이에 따라 국가별로 다른 수혈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초응급 상황에서 혈액형 검사 없이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universal) 적혈구인 ‘O형 RhD 음성 혈액’의 경우 유럽에서는 확보가 쉬운 반면, 한국에서는 공급 부족으로 ‘O형 RhD 양성 혈액’을 불가피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연구팀은 “RhD 음성 혈액 확보하기 위해 헌혈자 등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하지만 코로나 등 위기 상황이 닥치면 수급이 어려울 수 있다”면서 “보다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마련하고, 예외적으로 사용할 때를 대비해 보다 예측 가능하고 정밀한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혈액형 검사에도 유전적·인종적 특성 반영이 필요한 상황이다.
유럽이나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 비해 한국인과 일본인에서 상대적으로 흔한 cis-AB형은 서양에서 개발돼 국내 보급된 자동화 일부 장비에서 AB형으로 잘못 진단될 수 있다고 연구팀은 보고했다.
추가 검사 없이 cis-AB혈액형 환자에게 AB형 혈액 적혈구를 수혈하면 ‘항원항체 반응’(몸 속에 침입해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항원에 맞서 면역세포가 항체를 만들어 싸우는 것)으로 적혈구가 파괴돼 혈액 내 용해되는 용혈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아시안-타입 델(Asian-type DEL)’ 역시 마찬가지다.
이 혈액형은 서양인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동양인에서만 발견된다.


문제는 기존 검사법으로는 RhD 음성으로 판정되는 데다 ‘RHD 유전자’를 검사하지 않을 경우 정확하게 아시안-타입 델을 검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혈액형을 가진 사람은 소량이지만 RhD 항원을 가지고 있어 이들의 혈액을 RhD 음성환자에게 그대로 수혈할 경우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연구팀은 “RhD 음성으로 분류된 헌혈자에게 RHD 유전자 검사가 실시돼야 안전한 수혈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적혈구 항체 검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Mia나 Dia 항원에 대한 항체는 동아시아에서는 자주 발견되지만, 대부분 서구에서 개발된 상용 항체 선별검사 키트에서는 이를 검출할 수 없어 국내외에서 급성 용혈 반응 및 태아 신생아 용혈 질환이 보고된 바 있다.

임하진 교수는 “동아시아인 특성에 맞는 혈액형 유전자 검사법과 수혈 시 발생하는 혈액형 항원항체 반응을 확인하기 위한 적혈구 비예기 항체 패널 도입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 희귀 혈액형 보유자를 위한 정밀한 헌혈자·수혈자 매칭 시스템 개선 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조덕 교수는 “기존 서구 중심 수혈 기준이 보편적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 연구”라며 “국제화 시대에 의료도 인종적 다양성을 수용한 세분화된 시스템이 각 국가마다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수혈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트랜스퓨전(Transfusion)’ 최근호에 실렸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