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독립성 강화⑤] 골든타임 생명인데…검찰·법원 기다리다 피해자 안전 위기더팩트 기사제공: 2025-06-18 00:06:05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늘면서 피해자 보호도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성폭력, 스토킹 등 재범 위험이 높은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할 수 있는 임시조치가 필수다. 하지만 현행법상 임시조치는 검찰을 거쳐 법원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구조라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이덕인 기자

이재명 정부가 검찰·사법 개혁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면서 경찰도 변혁이 불가피하게 됐다. 경찰은 수사구조 재편으로 책임이 커지는 만큼 독립성 강화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에도 경찰은 여전히 검찰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행정안전부 산하 경찰국 설치로 경찰의 중립성과 투명성이 보장되지 못하고 정권에 휘둘린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더팩트>는 새 정부 출범을 맞아 수사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국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경찰 독립성 강화 방안을 총 다섯 편에 걸쳐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더팩트ㅣ김영봉·이윤경 기자]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늘면서 피해자 보호도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성폭력, 스토킹 등 재범 위험이 높은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할 수 있는 임시조치가 필수다. 하지만 현행법상 임시조치는 검찰을 거쳐 법원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구조라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18일 경찰청에 따르면 가정폭력 범죄 임시조치는 지난해 7186건으로 2020년 3612건보다 98.9% 급증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 29조에 따르면 판사는 가정보호사건의 원활한 조사·심리 또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임시조치를 할 수 있다.

임시조치 방법으로는 △피해자 또는 가정구성원의 주거 또는 점유하는 방실(房室)로부터의 퇴거 등 격리 △피해자 또는 가정구성원이나 그 주거·직장 등에서 100m 이내의 접근금지 △피해자 또는 가정구성원에 대한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의료기관이나 그 밖의 요양소 위탁 등이 있다. 사법기관 판단에 따라 이를 중복 적용할 수 있다.

문제는 경찰이 범죄 현장에서 즉각적인 임시조치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임시조치를 위해선 검찰을 거쳐 법원에 청구해야 가능하다. 검사는 가정폭력이 재발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직권으로 또는 경찰의 신청에 의해 법원에 임시조치를 청구할 수 있다. 경찰은 긴급할 경우 직권 또는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의 신청으로 긴급임시조치를 내릴 수 있지만 이후 검사에게 임시조치를 신청해야 한다. 이때 임시조치 청구는 긴급임시조치를 한 때부터 48시간 이내 해야 한다.

가정폭력뿐만 아니라 아동학대나 성폭력, 스토킹 등 범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에 따르면 경찰은 직권으로 긴급임시조치만 할 수 있으며 임시조치의 청구권은 검찰에게만 있다. 성폭력범죄의 수사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칙에서도 경찰은 검찰에 임시조치를 신청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18일 경찰청에 따르면 가정폭력 범죄 임시조치는 지난해 7186건으로 2020년 3612건보다 98.9% 급증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 29조에 따르면 판사는 가정보호사건의 원활한 조사·심리 또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임시조치를 할 수 있다. /남윤호 기자

이에 제도적 한계로 피해자 보호의 골든타임을 놓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분리 조치가 시급한데 검사의 승인 지연이나 불청구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공간에 머물게 되면서 2차 피해 위험도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경기북부경찰청은 한 남성이 여성의 목을 조르고 물건을 던진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긴급임시조치를 내린 뒤 지난 11일 검찰에 임시조치를 신청했다. 경찰은 이전 신고 이력을 토대로 두 사람을 사실혼 관계로 판단했지만, 검찰은 '사실혼 관계로 보기 어렵다'며 임시조치를 불청구했다. 경찰은 사안이 심각하다고 보고 지난 13일 다시 임시조치를 신청했다.

일선 경찰관들은 여성·아동 대상 범죄 증가에 따라 임시조치 절차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경찰관은 "대부분의 검사들이 피해자를 보호하는데 공감하지만 이런 불청구 사례도 가끔 발생한다"며 "이 같은 경우가 발생하면 피해자는 가해자와 분리되지 않아 2차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경찰관은 "피해자 보호와 긴급 수사는 시간을 다투는 문제인데, 경찰이 검찰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법률과 불필요한 절차로 피해자 보호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며 "임시조치는 시급성을 요하는 만큼 검사뿐만 아니라 경찰도 법원에 직접 청구하는 개선안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법원이나 검찰이 직접 목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급적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윤호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이런 사안들은 시간이 굉장히 중요한데, 경찰은 현장을 본다. 현장을 본 사람에 비해 간접적인 설명만 듣고 판단하는 사람은 감각이 둔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런 이유로 훨씬 보수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으니 경찰의 판단을 가능한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법제도를 가해자 중심이 아니라 피해자 중심으로 운영하는 등 인식을 달리하는 방법도 있다"며 "지금은 접근금지 명령을 내려도 감시할 수 없으니 본인이 지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지키지 않는 경우 강한 처벌을 하는 등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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