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장의 13시즌 만의 챔프전 진출 이끈 ‘충무 쯔위’ 박혜민의 깜짝 리베로 변신...노란, 최효서 대체할 수 있는 옵션될 수 있을까 [남정훈의 오버 더 네트]세계일보 기사제공: 2025-03-30 09:00:00

여자 프로배구 정관장의 7년차 아웃사이드 히터 박혜민(25)의 별명은 ‘충무 쯔위’다.
2018~2019 신인 드래프트 전체 3순위로 GS칼텍스의 지명을 받은 박혜민은 데뷔 당시 예쁘장한 외모로 주목을 받았고, 팬들은 GS칼텍스의 홈 구장인 서울 장충체육관과 걸그룹 ‘트와이스’의 멤버인 쯔위를 합쳐 ‘장충 쯔위’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2021~2022시즌을 앞두고 최은지와 1대1 맞트레이드되면서 정관장 유니폼을 입게됐고, 자연스레 별명은 정관장의 대전 충무체육관을 따 ‘충무 쯔위’가 됐다.

아웃사이드 히터로서는 장신축에 속하는 1m81의 신장에 리시브와 수비 능력도 좋은 박혜민의 단점을 꼽자면 부족한 파워와 여기에서 기인하는 공격력이다.
이 때문에 주전으로 기용되기 보다는 리시브 능력이 부족한 주전 아웃사이드 히터의 후위 세 자리를 대신 뛰는 역할을 맡았다.
올 시즌에도 부키리치나 표승주가 흔들리면 가장 먼저 부름을 받는 NO.1 백업 아웃사이드 히터 역할을 맡았다.
그랬던 ‘충무 쯔위’가 2024~2025 V리그 챔피언결정전 진출이 걸린 29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위기에 빠진 정관장을 구해낸 ‘히로인’으로 거듭났다.
아웃사이드 히터로서 뛴 게 아니었다.
급하게 파란 조끼를 입고 팀 후방 수비를 책임지는 리베로로 뛰며 얻어낸 결과여서 더욱 놀랄만 했다.

박혜민이 이날 시작부터 리베로로 등록된 건 아니었다.
사연은 이랬다.

정관장이 세트 스코어 1-0으로 앞선 2세트 초반, 2-5로 뒤진 상황에서 주전 리베로 노란이 등 통증을 호소했고, 백업 리베로인 최효서가 대신 주전으로 나서게 됐다.
그러나 최효서는 리시브가 크게 흔들렸다.
8-9에서 김다인의 서브를 받은 리시브가 세터 염혜선 머리 위가 아닌 관중석으로 날아가며 서브 에이스를 허용했다.
흔들리는 최효서를 간파한 김다인은 이번엔 느리고 뚝 떨어지는 짧은 서브를 최효서에게 날렸고, 최효서는 이를 제대로 손을 갖다 대지도 못하고 또 한 번 서브 에이스를 허용했다.

이후에도 최효서가 흔들리자 10-16으로 뒤진 상황에서 정관장 고희진 감독은 승부수를 던졌다.
박혜민에게 조끼를 입혀 리베로로 포지션을 변경해 기용한 것이다.
1세트만 해도 부키리치와 교체해 아웃사이드 히터로 뛰었던 박혜민에게 수비 전문 선수로 뛰게 한 것이었다.
더 이상 기용하기 힘든 노란, 이미 멘탈이 탈탈 털린 최효서보다는 팀 내 아웃사이드 히터 중에는 가장 수비력이 좋은 박혜민을 리베로로 쓰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이는 곧 노란의 등 부상이 괜찮아져도, 최효서가 멘탈을 회복해도 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고육지책이자 배수진이었던 셈이다.
박혜민 투입은 제대로 적중했다.
리시브 효율은 16.67%로 그리 좋진 않았지만, 팀 내 최다인 15개의 디그를 걷어냈다.
디그 성공률은 100%였다.
박혜민이 코트 후방에서 상대 공격을 든든히 걷어내고, 이를 메가(인도네시아), 부키리치(세르비아)의 쌍포의 공격 득점으로 치환하면서 정관장은 3,4세트를 모두 잡아내며 세트 스코어 3-1(26-24 12-25 25-19 25-20)로 승리하며 2011~2012시즌 이후 무려 13시즌 만에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성공했다.
고희진 감독도 경기 뒤 “박혜민 덕분에 승리했다”고 칭찬할 만큼, 박혜민의 ‘깜짝 리베로’ 변신은 대성공이었다.

박혜민은 “감독님께서 괜찮으니 분위기를 살려 달라고 했다.
(최)효서보다는 제가 경험이 많아 감독님께서 투입하신 것 같다.
믿어주셔서 감사하다”라면서 “감각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제 연차가 쌓였다.
연습했던 것을 믿었다”라고 겸손함을 보였다.
고희진 감독으로선 이날 경기를 통해 또 하나의 옵션을 얻은 셈이다.
주전 리베로 노란은 디그 능력은 리그에서도 손꼽힐 만큼 수준급이지만, 리시브에서는 그리 특장점이 없는 선수다.
이날도 부상 전까지 8개의 리시브를 모두 정확하게 연결하지 못해 리시브 효율이 0%였다.
게다가 흥국생명과의 1라운드 맞대결에서도 상대의 목적타 서브의 표적이 되어 33개의 리시브를 받아 단 3개만 정확하게 연결하고, 3개의 서브 에이스를 허용해 리시브 효율 0%를 기록한 적도 있다.
최효서도 이날 경기에서 드러났듯, 경험 부족으로 챔피언결정전에서 주전 리베로를 맡기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박혜민이 리베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고희진 감독으로선 수비 옵션을 하나 더 얻었다.
박혜민은 챔프전에서 리베로로 뛸 가능성과 관련해 “이전 팀에서 챔프전에 간 것보다 이번이 더 좋은 것 같다.
팀에 기여해 그런지 짜릿하고 재미있다”면서 “원래 하던 서브, 후위 수비로 들어가든 리베로로 들어가든 팀에 도움이 되겠다”라는 각오를 전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