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앞은 한강수, 뒤는 삼각산이여/덕을 쌓으신 강산 사이에 만세를 누리소서. <신도가> 중
‘킹메이커’ 정도전(1342~1398)은 1394년 한양 천도 때 조선 개국과 태조 이성계를 칭송하는 <신도가>를 노래했다.
하지만 1398년 정도전은 이방원(훗날 태종) 일파의 습격을 받아 죽는다.
정도전은 허망하게 갔지만 그의 염원대로 조선 왕조는 명·청의 흥망성쇠에도 굳건히 버티며 500년 넘게 이어졌다.
세종은 아버지인 태종이 두 차례 '왕자의 난'을 통해 피, 땀, 눈물로 닦은 길 위에서 '백성'을 바라보며 '조선의 꽃'을 피웠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은 그 꽃봉오리가 움튼 순간들을 볼 수 있는 자리다.
도자기의 ‘백’, 서화의 ‘묵’, 불교의 ‘금’ 세 빛깔로 상징되는 새 미술은 ‘조선의 것’으로 시작해 ‘우리 것’으로 뿌리 내렸다.
지금도 대왕으로 칭송받는 세종은 브레인 집합소인 집현전을 통해 농법, 의료, 음악,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조선 스타일로 정립했다.
1443년 12월 훈민정음 창제 후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삼강행실도> 등이 새 문자를 통해 널리 퍼졌다.
이 흐름은 미술에서도 나타났다.
장인들을 엄격히 관리해 도자 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이뤘고, 사대부들은 서화를 통해 자연 속 이상향을 꿈꾸면서도 임금을 향한 절절한 충심을 노래했다.
왕실은 부처에게 안녕을 빌었고, 보통 사람들은 불교를 통해 위안을 얻었다.
15~16세기 691건에 달하는 작품이 출품된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들을 꼽아봤다.
세종과 그릇 밑바닥 장인
조선은 중앙집권 체제를 통해 최첨단 기술 ‘백자’ 생산에 성공한다.
당시 1300도 고온에서 구워낸 백자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조선 단 두 나라였다.
세종은 그릇 밑바닥에 이를 만든 장인 이름을 쓰게 하는 식으로 공납 자기 품질을 유지했다.
세조 때는 전국 장인을 경기도 광주로 불러들여 도자기 제작소인 관요를 설치하고, 왕실용 백자 생산에 주력토록 했다.
안견과 안평대군
이번 전시에서는 안견의 작품과 안평대군의 컬렉션을 볼 수 있다.
안견의 <사시팔경도>는 사계절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책 <조선 시대 회화>에 따르면 안견의 후원자였던 안평대군은 중국 거장들의 그림을 대거 소장했다.
안평대군 컬렉션은 안견의 그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안평대군이 역대 명필들 글씨를 모아 만든 조선 최초 명필 모음 <비해당집고첩> 등을 볼 수 있다.
이현보와 퇴계 이황
조선시대 대표 문신 이현보(1467~1555)는 <어부가>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도 우국충절을 드러냈다.
백성을 소중히 여겼던 그는 1519년 안동부사 시절 남녀귀천을 떠나 80세 이상인 노인 수백 명을 초대해 색동옷을 입고 춤춰 '때때옷의 선비'로 불렸다.
16세기 승려 진영처럼 그려진 이현보의 초상화는 대구 동화사 화승 옥중상인이 그려준 것으로 추정된다.
이현보와 친분이 두터운 퇴계 이황(1501~1570)이 참석한 모임을 그린 <미원계회도>도 있다.
보통 사람과 부처
불심이 깊었던 세조는 간경도감을 세우고 경전을 펴냈다.
기존 경전은 한글로 번역했다.
15세기 <석가탄생도>의 왕의 병풍 속 산수화는 안견화풍이다.
불화 연구 권위자인 정우택 교수는 이 불화가 성종 때인 1476년 왕세자인 연산군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궁중 불화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그림 속 석가모니 아버지 정반왕은 성종인 셈이다.
아주경제=윤주혜 기자 jujusun@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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