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티' 생존 지렛대로…불황에도 '우뚝' 일어서는 석화 기업은더팩트 기사제공: 2025-05-02 00:06:04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불황 장기화로 올해 1분기도 실적이 좋지 않을 것으로 점쳐지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하고 있는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 위주 기업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더팩트 DB

[더팩트ㅣ장혜승 기자]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불황 장기화로 올해 1분기도 실적이 좋지 않을 것으로 점쳐지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하고 있는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 위주 기업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 기업은 아직 중국의 기술력이 미치지 못하는 스페셜티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는다는 계획이다.

2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의 올 1분기 예상 영업이익은 762억원으로 전 분기(100억원) 대비 662%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다른 주요 석화기업들의 실적이 부진한 상황과 대조적이다. 한화솔루션의 1분기 케미칼 부문 영업손실은 912억원이다. 주요 제품의 공급과잉이 지속되면서 판매가격이 하락했고 대규모 정기보수가 진행되면서 수익성이 둔화됐다. LG화학은 석유화학 부문에서 매출 4조7815억원, 영업손실 565억원을 기록했다. 전 분기보다 적자 폭은 줄었지만 대산공장 정전에 따른 가동 중지와 국내 전력 단가 상승 등 수익성 악화 요인이 작용했다.

같은 석유화학 업계 안에서도 금호석유화학의 특성은 다르다. 석유화학 업계는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만든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 같은 기초 유분을 만드는 '업스트림(upstream)', 기초 유분을 다시 분해해 폴리에틸렌, 합성고무 같은 정밀 화학제품을 만드는 '다운스트림(downstream)'으로 나뉜다. 금호석유화학은 다운스트림 업체에 속한다.

의료용·산업용 장갑 원료로 쓰이는 NB라텍스 합성 고무 소재 분야가 금호석유화학의 호실적을 견인할 것이란 분석이다. 금호석유화학은 NB라텍스 세계 1위 기업으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도 약 25%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라텍스 장갑의 수요가 늘면서 중국의 라텍스 수입액은 증가세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라텍스 수입액은 전년 대비 39.23% 증가했다.

미국의 중국산 장갑에 대한 관세 부과도 호재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중국산 의료용 장갑에 올해 50%, 2026년 100%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금호석유화학이 생산하는 말레이시아산 NB라텍스는 상호관세 유예로 현재 10% 관세만 적용된 상태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추가 관세, 상호 관세 부과로 중국 장갑의 미국 수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국내 NB라텍스 업체인 금호석유화학에 긍정적인 기회"라고 말했다. 김도현 SK증권 연구원도 "금호석유화학의 1분기 합성 고무 부문 영업이익이 전 분기 대비 240%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불황 장기화로 올해 1분기도 실적이 좋지 않을 것으로 점쳐지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하고 있는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 위주 기업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은 UL 저탄소 인증을 받은 화학적 재활용 소재 에코트리아 CR로 만든 SK케마칼의 화장품 용기. /SK케미칼

HS효성첨단소재도 올 1분기 영업이익이 전 분기 대비 7% 증가한 491억원을 기록했다. HS효성첨단소재는 타이어코드 부문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 타이어코드는 타이어의 내구성, 주행성,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고무 안쪽에 넣는 섬유 재질의 보강재를 말한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PET T/C)는 글로벌 경쟁력을 바탕으로 높은 가동률을 시현 중으로, 판가 상향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며 "탄소섬유 역시 중국 경쟁사 평균 가동률이 50% 미만으로 적자를 나타내 가동률 조정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아직 1분기 실적 전망치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친환경 스페셜티 소재에 강점을 보이는 SK케미칼 역시 안정적인 실적이 기대된다. SK케미칼은 지난해 자회사를 제외한 별도 기준 매출 1조3405억원, 영업이익 1111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1년 전보다 8.7%, 영업이익은 30% 각각 증가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SK케미칼이 사업 회사로 분할된 2017년 이래 최대 실적이다.

친환경 스페셜티 소재인 코폴리에스터가 실적을 견인했다. SK케미칼에서 코폴리에스터 사업을 담당하는 그린케미칼 부문은 지난해 91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전년 대비 71% 성장했다. 코폴리에스터는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지 않는 재생 플라스틱 소재다. 유리처럼 투명하고 광택이 나면서도 가볍고 튼튼해 전자부품·건축자재·광학필름 등 수요가 커지고 있다. SK케미칼은 세계 코폴리에스터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최근 석유화학 기업들은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실적이 부진한 범용 중심의 체질을 개선해 스페셜티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고 있다. 사업구조 재편을 통해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해 수익성을 확보한다는 의도다.

롯데케미칼은 포트폴리오 고도화 작업을 통해 현재 66% 수준의 기초소재 비중을 2030년에는 30%까지 낮춰 스페셜티가 중심이 되는 사업 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양그룹도 화학그룹 체질 개선에 나서며 스페셜티와 글로벌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하고 있다.

zzang@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