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도 소용없다”…집밥·외식 ‘동반 추락’ 진짜 이유는? [일상톡톡 플러스]세계일보 기사제공: 2025-05-05 10:00:00

식재료 구매, 외식 소비 동반 감소…경기 위축 넘어선 구조적 소비 패턴 변화
전문가들 “양쪽 모두 위축,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심각하게 약화됐다는 신호”
경기 하방 압력 가중…필수재인 먹거리마저 줄이는 ‘생계형 소비 축소’ 확산
가공 식품과 외식 가격 상승, 후행적으로 작용…소비 위축 악순환 더욱 심화
2006년 관련 통계 시작된 이래 집밥·외식 소비 동반 감소한 건 이번이 처음
먹거리 소비 위축, 경기 둔화 넘어…가계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 드러난 결과

마트나 시장에서 식재료를 사는 ‘집밥’ 수요와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는 ‘외식’ 소비가 동시에 줄어드는 이례적인 현상이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서울 도심 역세권의 한 돼지갈비 전문점. 수십 년째 장사를 이어왔지만 최근 폐업했다. 김현주 기자

채소와 과일 등 신선 식품뿐 아니라 가공식품까지 고물가가 지속되는 가운데, 건설업을 중심으로 한 경기 침체가 가계 살림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음식료품 소매판매지수와 음식점업 생산지수는 2023년부터 모두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통상 집밥과 외식은 보완 관계에 있어 한쪽 소비가 줄면 다른 쪽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먹거리는 의식주 중 가장 기본적인 필수재로, 외부 환경이 변해도 일정 수준의 소비가 지속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리된 음식을 사 먹든, 식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하든 양자택일의 소비는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외식 소비가 급감했지만, 집밥 수요는 크게 늘었다.
당시 음식점업 생산은 16.0% 줄었지만, 음식료품 소매판매는 13년 만에 최대폭인 4.6% 증가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보완 관계가 무너졌다.
정부에 따르면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집밥과 외식 소비가 동시에 줄어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 한복판, 변두리 이제 그 어느 곳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임대문의’ 현수막. 김현주 기자

음식료품 소매판매는 2021년까지 매년 증가했으나, 2022년 -2.5%를 기록한 후 3년째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초기에는 배달 음식 수요 증가가 오프라인 식재료 구매 감소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였으나, 최근에는 배달 수요를 포함한 전체 음식점업 생산 자체가 줄고 있는 상황이다.

음식점업 생산은 코로나19 기간 급락한 후 2021년과 2022년 반등했다.
하지만 2023년 -0.7%, 2024년 -1.9%로 다시 감소 전환됐다.
특히 감소 폭은 해마다 확대되는 추세다.

이 같은 먹거리 소비의 동반 위축은 올해 1분기에도 이어졌다.

2024년 1분기 음식료품 소매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0.3% 줄었다.
음식점업 생산은 3.4% 감소해 2023년 4분기(-4.7%)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했다.

고물가 압력은 이러한 추세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2023년 이후 이상기후 등으로 채소·과일 등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며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을 견인했다.
최근에는 고환율 여파로 수입 원재료 가격이 올라 가공식품과 외식 가격도 연쇄적으로 오르고 있다.

지난달 가공식품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4.1% 상승해 2023년 12월(4.2%) 이후 16개월 만에 최대폭 상승을 기록했다.
외식 물가도 3.2% 올라 작년 3월(3.4%)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경기 부진으로 가계의 구매력이 약화된 점도 소비 감소의 주요 요인이다.

국내총생산(GDP)의 약 15%를 차지하는 건설업은 최근 4개 분기 연속 역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1분기에는 무려 20.7% 감소했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3분기(-24.2%) 이후 최대폭 하락이다.

작년 4분기 기준 소득 상위 40~60%에 해당하는 중산층 가구의 가처분소득(여윳돈)은 3분기 연속 줄며 5년 만에 다시 70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도심 대형 상권은 물론 동네 상가에서도 이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점포문의’ 안내. 김현주 기자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을 단순한 경기 둔화를 넘어선 소비 구조의 변화로 해석하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나타나는 식재료 구매와 외식 소비의 동반 감소는 단순한 경기 위축을 넘어선 구조적 소비 패턴의 변화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에는 외식과 집밥 소비가 일정 부분 대체 관계에 있었지만, 이번처럼 양쪽이 모두 위축된 것은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심각하게 약화됐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이어 “고물가에 더해 건설업 등 경기 하방 압력이 가중되면서, 필수재인 먹거리마저 줄이는 ‘생계형 소비 축소’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가공식품과 외식 가격 상승이 후행적으로 작용해 소비 위축의 악순환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2006년 관련 통계가 시작된 이래 집밥과 외식 소비가 동반 감소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현재의 먹거리 소비 위축은 경기 둔화를 넘어서 가계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난 결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