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韓경제, 성장률 19개국 중 꼴찌… 1분기 역성장 현실화세계일보 기사제공: 2025-05-11 18:29:11

극심한 내수 부진… 1분기 성장률 -0.246%로 ‘뚝’
4개 분기 연속 세계 하위권 성적 예상
소비·건설 감소… 경기침체 장기화 탓
글로벌 IB들, 2025년 성장률 한 달 만에 하향
평균 1.4%→0.8%… 거의 반토막 수준
업계 “한은 금리인하·2차 추경 나서면
하반기부터 경기 다소 나아질 것” 전망

글로벌 경기 침체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한국 경제의 부진이 유독 심상치 않다.
1분기 역성장이 현실화한 데 이어 대내외 악재까지 겹치면서 올해 한국이 ‘0%대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중론이 돼 가는 분위기다.

11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246%로, 지금까지 1분기 성장률을 발표한 주요 19개국 중 가장 낮았다.
이들은 중국을 제외하면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다.

최근 한국 경제의 성장 부진이 세계 주요국들과 비교해도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사진은 11일 서울 명동거리에서 영업을 준비 중인 식당가. 연합뉴스

1분기 성장률 1위는 아일랜드(3.129%)가 차지한 가운데 중국(1.2%), 인도네시아(1.124%) 등 아시아 신흥국이 상위권에 올랐다.

올해 1분기 역성장을 발표한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면 자국 관세정책에 타격을 크게 입은 미국(-0.069%)과 헝가리(-0.152%)뿐이었다.
한국과 경제 규모가 유사한 스페인(0.568%)을 비롯해 이탈리아(0.26%), 독일(0.211%), 프랑스(0.127%) 등 유럽 국가들은 역성장을 면했다.

아직 1분기 성장률을 공개하지 않은 일본·영국은 블룸버그가 조사한 주요 기관 전망치 평균이 각각 -0.1%, 0.6%로 한국보다 사정이 나을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 경제성장률은 네 분기째 세계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은행이 분기별로 37개 국가(콜롬비아·리투아니아 제외 OECD 회원국, 중국)와 우리나라 성장률을 비교한 결과 한국은 지난해 1분기만 해도 6위 수준이었다가 같은 해 2분기 역성장을 기록하며 32위로 떨어진 이후 뚜렷한 반등에 실패했다.
이대로라면 올해 1분기도 하위권 성적표를 받을 위기다.

한국 경제를 지켜보던 국내외 기관들도 1분기 역성장 소식에 빠르게 눈높이를 낮추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해외 주요 투자은행(IB) 8곳이 제시한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지난 3월 말 평균 1.4%에서 지난달 말 평균 0.8%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바클리는 1.4%에서 0.9%로,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1.5%에서 0.8%로, 씨티는 1.2%에서 0.6%로, 골드만삭스는 1.5%에서 0.7%로, JP모건은 0.9%에서 0.5%로, HSBC는 1.4%에서 0.7%로, 노무라는 1.5%에서 1.0%로, UBS는 1.9%에서 1%로 각각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지난 2월 JP모건이 성장률 전망을 0.9%로 하향했을 때만 해도 시장 일각에선 지나친 우려라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현재는 IB 8곳 중 6곳이 1% 미만 성장을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한은도 이달 29일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기존 성장률 전망치(1.5%)를 대폭 낮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국 경제가 유독 장기 부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로는 내수 침체가 거론된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반도체 하락 사이클이나 미국 관세정책 등 수출 불안 요인도 있지만, 무엇보다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소비와 건설 등 내수가 너무 부진하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1분기 민간소비는 전기 대비 0.1% 감소했고, 건설투자는 3.2%, 설비투자는 2.1% 각각 축소됐다.
2020∼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고, 이후 2023년까지 이어진 고금리 상황 등은 건설업계 전반의 비용을 끌어올렸다.
업계에선 이 같은 선행 지표들의 영향으로 올해 상반기까지는 건설투자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부터 내수시장이 다소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반기부터 건설경기 악재들이 완화되고, 한은이 금리를 다시 인하할 가능성도 커졌기 때문이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최근 한 보고서에서 한은이 연내 2.25%까지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원자재 가격, 금리 등 건설경기 악재들이 올 하반기로 갈수록 완화될 여지가 있어 내년에는 건설경기 회복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짚었다.

사진=연합뉴스

시장에서는 경기 하방 압력이 높은 만큼 한은이 이달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예상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이와 관련해 “일련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투자가 얼마나 떨어지는지, 5월 초 연휴에 소비가 얼마나 늘었을지가 최대 관심사”라며 금리 인하 폭과 속도는 5월 내수 지표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음달 새 정부가 출범하면 경기부양에 나설 가능성이 큰 것도 경제 회복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새 정부가 하반기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에 나설 가능성이 크고, 금리 인하 효과도 서서히 나타나면서 경기가 상반기보다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낙관론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추경 효과가 예상보다 미흡하거나 트럼프 관세 정책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 0%대 경제성장률도 가능할 것”이라며 “한국 경제 성장에 있어 하방 리스크가 더 큰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완충하기 위한 정책당국의 적극적인 부양 조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