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력은 옛말…보릿고개 넘는 정유사 '효자'는 윤활유더팩트 기사제공: 2025-05-27 00:06:03

국내 정유업계가 업황 부진으로 1분기 실적이 저조한 가운데 윤활유 사업이 수익 방어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SK이노베이션

[더팩트ㅣ장혜승 기자] 국내 정유업계가 업황 부진으로 1분기 실적이 저조한 가운데 윤활유 사업이 수익 방어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윤활유는 정유사의 대표적인 비(非)정유사업 중 하나로 꼽혔는데 위상이 달라졌다는 평가다. 정유사들은 가격 변동성이 적어 안정적 수익 확보가 가능한 윤활유 기반 액침냉각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일제히 급감한 반면 윤활유 사업 부문에서는 안정적 수익을 냈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1분기 44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 윤활유 사업은 121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HD현대오일뱅크도 올해 1분기 영업이익 311억원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89.8% 급감했다. 반면 윤활유 사업에서는 46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GS칼텍스는 영업이익 1161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72% 감소했지만 윤활유 사업에서는 영업이익 916억원을 기록했다. 에쓰오일은 영업손실 215억원을 기록했지만 윤활유 사업에서는 1097억원의 흑자를 냈다.

윤활유는 기계 부품 간의 마찰을 줄이고 마모를 방지하는 유체로, 윤활기유에 다양한 첨가제를 혼합해 제조한다. 열을 흡수하고 분산시키며 부식을 방지하고 오염물도 제거해 기계의 효율성을 높이고 수명 향상에도 기여한다. 국제유가나 글로벌 경기 변동 영향이 적어 정유사 입장에서는 안정적 수익원이 될 수 있다.

전망도 밝다. 시장조사기관인 모더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국내 윤활유 시장은 연평균 3.1% 성장해 올해 8억5749만 리터에서 2030년 9억 9793만 리터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주목받는 분야는 인공지능(AI) 시대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꼽히는 액침 냉각 시장이다. 액침 냉각은 윤활기유를 원료로 개발돼 전기가 통하지 않는 '냉각 플루이드(냉각액)'를 활용해 데이터센터·ESS·전기차 배터리의 열을 식히는 기술이다. 서버나 배터리 등의 발열 장치를 비전도성 액체에 직접 담가 열을 제거하기 때문에 기존의 냉각 방식인 공랭식(공기 냉각)이나 액체 배관 방식보다 빠르게 열을 식힐 수 있다.

국내 정유업계가 업황 부진으로 1분기 실적이 저조한 가운데 윤활유 사업이 수익 방어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HD현대오일뱅크 직원들이 액침냉각설비에 담긴 냉각유와 서버를 테스트하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

이에 따라 액침 냉각 기술이 고도화 AI 시대의 주류 냉각 방식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공랭식을 액침식으로 변경했을 때 AI 데이터센터 전력 밀도는 현재의 10배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냉각 비용도 95% 절감할 수 있다. 배터리 업계도 전기차 화재 위험성을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이 기술을 주목하고 있다.

산유국의 이례적 증산에 따른 석유 공급 초과로 2분기 실적 개선이 요원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정유사들은 윤활유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공동 개발한 액침냉각 제품(Fluid, 플루이드)을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ESS에 공급 중이다. SK온과는 전기차 배터리용 액침냉각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GS칼텍스는 2023년 11월 자체 개발한 액침 냉각유 '킥스 이머전 플루이드 S'를 출시한 이후 제품을 총 4종으로 세분화했다. HD현대오일뱅크가 생산하는 액침냉각 전용 윤활유 '엑스티어 E-쿨링 플루이드'는 지난해 12월 액침 냉각 시스템 기업 GRC에서 일렉트로세이프 프로그램 인증을 받았다. GRC는 자사가 구축한 설비는 물론 전 세계에 구축된 모든 액침냉각설비에 적합한 제품에만 일렉트로세이프 프로그램 인증을 수여하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네이버클라우드와 함께 데이터센터용 액침 냉각액에 대한 실증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10월 인화점이 250도 이상인 고인화점 액침 냉각유 제품을 출시하며 저인화점부터 고인화점 제품까지 제품군을 확대했다. 에쓰오일이 개발한 액침 냉각유는 데이터센터는 물론 전기차 배터리와 ESS 등 다양한 산업에 활용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업계 관계자는 "윤활유는 차량, 기계설비 등에 활용이 필수적으로 기타 정유 제품에 비해 가격 변동성이 적어 안정적인 수익 확보가 가능하다"며 "앞으로도 안정적인 사업 운영을 통해 수익성을 확보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zzang@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