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만 키우고… 의대 증원 ‘0명’세계일보 기사제공: 2025-04-17 19:12:24

2026학년도 모집인원 3058명 확정
정부 “수업 정상화 위한 선택”
당초 ‘복귀율 높으면…’ 단서 무색
의대총장들 건의하자 바로 “수용”
李 부총리 “의대생 추가 복귀 기대
수업 거부자 유급 유예 더는 불가”
환자단체들 “참담” “사기극” 반발
의협 “환영”… 개혁 전면 중단 촉구

내년 전국 의과대학 모집인원이 증원 전 수준인 3058명으로 확정됐다.
당초 늘린 정원(5058명)보다 2000명, 올해 실제 모집인원(4565명)보다 1507명 줄어든 규모다.

정부는 의대 수업 정상화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이번 조치로 수업 복귀율이 높아질 것이라 했지만, 실제 의대생들이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 조정 방향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부는 전국 40개 의과대학 총장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2026학년도 의과대학 모집 인원을 ‘증원 0명’인 3058명으로 확정했다. 뉴스1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6학년도 모집인원을 2024학년도 정원 수준으로 조정하자는 총장들의 건의를 수용하기로 했다”며 내년 의대 모집인원을 3058명으로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당초 교육부는 ‘수업이 정상화될 정도로’ 의대생 복귀율이 높을 경우 내년 모집인원을 3058명으로 되돌리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전국 의대의 평균 복귀율은 30% 수준에 불과하지만, 의대 총장들은 수업 복귀를 촉진하기 위해 내년 모집인원을 3058명으로 줄여야 한다고 전날 정부에 건의했다.

이 부총리는 “학생 복귀 수준은 미진하지만 학사 일정과 대학 입시 일정을 고려할 때 모집인원을 확정하고 교육에 총력을 다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의대 교육을 정상화해 의사 양성 시스템이 멈추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증원을 기대하셨던 국민 여러분께 의료개혁이 후퇴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를 끼치게 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2027학년도 이후 정원은 수급추계위원회를 중심으로 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께 송구”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 세 번째)이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대 모집인원 관련 브리핑을 열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정부는 전국 40개 의과대학 총장들의 건의에 따라 내년도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철회하고 모집인원을 3058명으로 확정했다. 뉴스1

이 부총리는 “지금이 의대교육 정상화의 마지막 기회고, 의료인력 양성이 더 이상 중단돼선 안 된다는 절박함과 책임감을 안고 이 자리에 섰다”며 “이번 발표를 계기로 추가적인 복귀가 활발히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총장들의 ‘3058명안’은 교육부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카드였다는 평가다.

의대 수업은 지난해 2월부터 14개월째 파행을 이어가고 있는데, 수업 거부가 길어질수록 수업 정상화는 더욱 어려워진다.
교육부 입장에선 하루라도 빨리 수업을 정상화하는 것이 중요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에 증원된 대로 5058명을 뽑는다고 발표한다면 수업 거부 움직임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이 부총리는 “의학교육이 정상화돼야 의대 증원을 한 효과도 발휘될 수 있다”며 “정부가 의료개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의료개혁을 잘 추진하기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라고 했다.

17일 정부가 내년도 의과대학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 수준인 3058명으로 확정했다. 이는 정부가 지난달 말까지 의대생들이 전원 복귀할 경우, 내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전으로 되돌리겠다고 밝힌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이날 오후 서울시내 한 의과대학에 가운이 걸려있다. 뉴시스

교육부 관계자는 “100년 동안 의사가 배출 안 된 해는 작년이 처음이다.
6·25 때도 부산에서 천막치고 수업했다”며 “의대생을 보호하기 위한 결정이지 굴복한 게 아니다.
밀린 것이 아니라 물러난 것”이라고 전했다.

교육부와 대학은 이번 발표로 복귀를 망설이고 있는 의대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대학에서 의대생의 20∼30%는 강경하지만 30%는 수업에 들어오고 싶어하고 나머지 40%가량은 눈치를 보고 있는데, 이번 조치로 40%에게 돌아올 명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오봉 전북대 총장(의과대학 선진화를 위한 총장협의회 회장)도 브리핑에서 “이제 의대생 복귀에 있는 걸림돌은 모두 제거되었다고 본다”며 “4월 안에 많은 학생이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내년에 3개 학번이 함께 1학년 수업을 듣는 ‘트리플링’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 조정 방향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부는 전국 40개 의과대학 총장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2026학년도 의과대학 모집 인원을 ‘증원 0명’인 3058명으로 확정했다. 뉴스1

정부와 대학은 수업 거부자에 대한 유급 유예 조치는 없을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이 부총리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고, 더 이상 의대생을 위한 특별한 조치를 하기는 어렵다”며 “이번에 복귀하지 않으면 학생 여러분이 최대의 피해를 입는다.
책임감 있는 결정을 해 조속히 학업에 복귀해 주시길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이번에도 의대생들을 봐줬다는 비판을 피할 순 없다.
아울러 정부와 대학이 어렵게 내놓은 고육책들을 무시하며 1년 넘게 수업 거부를 이어가는 의대생들 행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의료계의 주장이 사실임이 확인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은 “국민과 환자는 의사 인력 증원과 의료개혁을 통해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계획을 믿고 지난 1년2개월 동안 의료개혁에 막대한 건강보험 재정과 세금을 투입한 것에도 반대하지 않았다”며 “그 결과가 의대 증원 정책 포기라니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도 “의대 모집인원 원점 조정은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비판했다.

의료개혁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의대 학사 일정이 완전히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여건을 감안한 조치라고 생각되나, 3월 초 발표한 2026년 의대 모집인원 결정 원칙을 바꾸게 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이 17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모집인원 동결을 환영하면서도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 해체 등 의료개혁 전면 중단을 촉구했다.
의협은 “내년 의대 모집인원 발표는 이제라도 정상으로 돌아가는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라며 “현재 정부는 의료개혁을 지속할 동력이 부족하다.
지금은 의료개혁 과제를 추진하는 것을 멈추고 추후 의료계와 지속가능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유나·장한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