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애도한 미국 학자… ‘소프트파워’ 주창한 조지프 나이의 유산세계일보 기사제공: 2025-05-10 14:00:00

‘소프트파워’ 개념을 주창한 미국 하버드대 조지프 나이 교수가 6일(현지시간) 별세한 가운데 중국에서 그를 기리는 목소리가 유독 높았다.
그가 중국에 우호적인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의 개념은 중국이 외교 전략을 정립하는 데 있어 유용한 이론적 무기가 됐기 때문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8일 “나이 교수는 중국 지도자들을 노골적으로 비판했지만, 중국이 가장 좋아한 미국 학자 중 한 명이었다”고 평가했다.
중국이 아직은 미국의 하드파워에 밀린다고 보는 상황에서 소프트파워를 먼저 구축해 국제적 위상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이 그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 조지프 나이 교수. 연합뉴스

소프트파워는 무기나 제재와 같은 하드파워와 달리 설득과 동의를 통해 영향을 행사하는 능력이다.
나이 교수는 문화, 가치, 제도에 기반한 국가의 매력을 강조했고 중국은 이 개념을 자국 외교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왔다.

중국 공산당 고위층도 그의 이론에 영향을 받았다.
왕후닝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은 1993년 푸단대 재직 시절 ‘문화는 국가적 힘: 소프트파워’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이 논문은 이후 수십 년간 중국의 소프트파워 담론을 이끄는 데 핵심 자료로 인용됐다.
왕 주석은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등 3세대 지도자의 책사로 활동한 인물이다.

팡중잉 ISEAS-유소프 이샤크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나이 교수는 중국 국제정치학 1세대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라고 말했다.
SCMP는 팡 연구원이 중국에서 소프트파워를 가장 먼저 연구한 학자 중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중국 학계에서는 나이 교수의 이론이 중국형 소프트파워 전략 수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본다.
칭화대 자오커진 교수는 “그의 개념이 중국 외교 정책의 전환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중국이 강조한 소프트파워는 나이의 정의와 다르다”며 “중국은 사회제도나 보편 가치보다는 전통문화와 독특한 통치방식을 앞세웠다”고 설명했다.

나이 교수는 생전 중국을 자주 방문했고, 미국 정책을 비판할 경우 중국 관영언론은 이를 빠르게 소개했다.
지난달 신화통신은 그와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약화시킨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중국이 매력 공세 외교에 다시 드라이브를 거는 시점과 맞물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를 두고 “중국이 전세계를 상대로 소프트파워 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중국 내에도 그의 개념에 대한 신중론은 존재한다.
런민대 스인훙 교수는 “소프트파워라는 개념은 설득력 있지만 본질적 정의와 측정이 어렵고 자칫 과장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이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방부 차관보로 재직하며 중국을 전략적으로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라며, “중국 내에서 그가 과도하게 우호적인 인물로 묘사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SCMP는 지난해 8월 나이 교수와의 인터뷰를 인용해 “중국은 아직 소프트파워 측면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지적도 함께 전했다.
난징대 주펑 국제관계학원 원장도 “그는 중국의 소프트파워 부족을 지적했지만, 중국을 이념적으로 차별하거나 배척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팡 연구원은 나이 교수의 죽음을 두고 “어쩌면 미국 세기의 종언을 상징하는 사건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영향력이 하드파워뿐 아니라 소프트파워 면에서도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이우중 특파원 lol@segye.com